[영남타워]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이 없어 부끄럽다(Ⅱ)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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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8   |  발행일 2020-05-28 제27면   |  수정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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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체육부장

이틀 전 우대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준비위원장(76)이 영남일보에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이 없어 부끄럽다'는 주제로 기고를 했다. 그는 올초 자랑스러운 대구시민 대상을 받은 분이기도 하다.

<사>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의 고문인 우 위원장은 오래전 망우공원 내 항일독립운동기념탑 건립에 5천400만원을 희사했고, 최근에는 대구 용수동 사유지 1만여평(4만7천520㎡)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부지로 기증했다.

1915년 그의 선친인 백산 우재룡 지사는 일본신사가 있던 달성공원에서 박상진·채기중 열사 등과 함께 광복회를 결성해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다. 광복회는 만주지부 총책으로 백야 김좌진을 임명할 정도로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비밀결사단체였다.

백산은 구한말 대한제국 군인으로 대구진위대에 복무하다 일제가 군대해산을 시도하자 탈영해 산남의진에서 활동하던 중 체포돼 두 번의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긴 수형생활을 하면서도 일제와 타협하거나 독립의지를 꺾지 않았다. 광복 후에는 광복회를 재건하고 평생 조국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한 분이다. 대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 백산의 흉상이 있다.

우대현 위원장은 백산의 장남이다. 대한제국 군인의 후손이라면 지금쯤 증·고손자가 될 세대인데, 백산이 늦깎이 결혼을 해 60세에 우 위원장을 낳았기 때문에 아들로 생존하고 있다. 우 위원장은 대부분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그러했듯 끼니를 겨우 이어갈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 학업도 가난 때문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갖은 고생을 하다 IMF 외환위기 전후에 겨우 자수성가했다.

우 위원장은 선친 못지않은 열정을 갖고 왕성하게 '21세기 대구 독립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임시정부 및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을 지어 자라나는 대구의 후손을 위한 교육의 산실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 바람이 이어져 지난 2월 광복회 대구지부와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가 동참했다.

지난 3월26일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발기인 대회를 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가 대구에서 창궐하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달에 모친 김소전 여사가 10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발기인 대회는 오는 7월20일 열릴 예정이다. 대회를 앞두고 우 위원장이 전직 대구시장을 비롯해 지역의 종교·정치·경제·학·법조·언론계 등 수장 300여 명을 직접 만나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곧 청와대와 총리실, 보훈처에 건립건의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펼친 거점 도시다. 2020년 기준 159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인구 비례로 볼 때 서울의 1.6배, 부산의 3배, 인천의 5배나 많은 '독립운동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또 전국에서 유일한 독립운동가 묘원인 국립신암선열공원이 있다. 하지만 서울·부산·광주는 물론, 김포·밀양·나주 같은 중소도시에도 있는 독립운동기념관이 대구엔 없다. 안동에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지만 대구만으로도 인물과 사료는 차고 넘친다. 지금도 의열단 창단 주역 이종암 의사와 태극단 사건의 주인공 서상교·김상길 독립지사의 대구 남산동 옛집은 명륜지구 재개발사업으로 헐리기 일보 직전이다. 현창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아직도 이 지경이니 나 역시 부끄러울 따름이다.
박진관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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