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몰락한 아버지의 추억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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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3   |  발행일 2020-06-03 제26면   |  수정 2020-06-03
여성상위 맞벌이세상
권위주의적 아버지
가족들한테 인정 못받아
부부가장시대 겨냥
살림 사는 아버지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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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아버지가 가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일거리가 남자한테만 집중됐던, 그래서 맞벌이 부부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란 벽이 사라지면 어머니와 자식의 영토는 일순 거덜 나 버렸다. 아버지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도망가고 싶어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했다. 때문인지 대다수 가장은 술병에 걸렸다. 가족들에겐 웬수 같은 술일지 몰라도 실은 그 술이 가족을 지켜주고 있었다. 공광규 시인의 그 유명한 시 '소줏병'의 주인공이 바로 그 시절 아버지 아닌가.

그런데 어느날부터 아버지가 부도수표로 처리되기 시작한다. 아버지란 이름만으로 가장이 될 수 없게 됐다. 아버지만 돈 버는 게 아닌 탓이다. 아버지보다 더 많이 버는 어머니, 어떤 아이는 유명 유튜버가 돼 10대 CEO 소릴 듣는다. 괜찮은 유튜버는 아버지보다 몇 배 괜찮은 인생 멘토이기도 하다. 고개 숙인 남자. 자기가 아버지인 이유가 고작 '그래도 내가 널 낳아줬으니깐'란 대목밖에 없는 지경이 됐다.

이제 누구라도 가장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엄마·자식·스마트폰·반려견도 가장이 될 수 있다. 장남한테 더 많은 걸 상속하던 시절에는 그래도 장남한테선 가장의 냄새가 풍겨졌다. 하지만 이젠 N분의 1 상속시대라 그 냄새도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부터 가족들은 아버지 음식을 챙겨주지 않는다. 다들 자기 좋은 걸 알아서 배달해 먹는다. 회식을 해도 아이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간다. 돈은 아버지의 몫. 누군 이제 가장 대신 '가족'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가장 상실의 시대,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한 아버지. 최근 그의 얼굴에 모처럼 햇살이 조금 비쳤다. 코로나19 지원금 때문이다. 그걸 받으러 의기양양 아침 일찍 주민센터 앞으로 가서 줄을 선다. 모처럼 자신이 가장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본다. 그 착각 위에 추억의 누런 월급봉투가 어른거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의 월급은 지금처럼 은행 계좌로 건너가지 않았다. 명세서가 적힌 누런 봉투에 담긴 월급을 수령했다. 그 봉투 때문에 겨우 가장 소릴 들을 수 있었다. 이어령 교수는 그 봉투를 '수렵시대에 남자들이 숲에서 잡아 온 노루·산돼지와 다를 것 없는 전리품'이라고 규정했다. 그 전리품 덕분에 삼복 철이 되면 장모도 사위가 너무 고마워 이름난 한의원에 가서 인삼, 녹용, 십전대보탕 등 수십만 원짜리 보약을 해 먹였다. 아버지가 가장이었던 시절 약전골목과 한의원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80년대 은행 전산화 시대의 전개와 함께 월급 봉투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가장의 권위도 반토막 난다. 현금의 촉감 대신 액수만이 가족한테 잠깐 공유될 따름이다.

집에 가도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 그들이 요즘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처음엔 가족한테 배신 당했다고 믿었다. 믿을 건 친구, 그중에서도 고교동창한테 엎어진다. 그러다가 친구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다시 가족 주위를 기웃거린다. 어라? 자기가 없어도 아내와 너무 잘 노는 자식들. 하늘을 올려다 보는 날이 는다. 허무한 심사를 채워주는 건 '나는 자연인이다'란 TV 프로그램.

눈치 빠른 아버지는 가장은 부부라고 생각한다. 아내를 먼저 챙겨주며 식구 감동시킬 걸 찾는다. 승부처는 음식. 자기들 좋아하는 음식을 즉석요리로 내놓으면? 그제서야 슬금슬금 관심을 보인다. 앗싸!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살림 사는 아버지가 부쩍 늘고 있다. 주방을 고수하자. 그래, 아버지 주부를 자청한 것이다. 가끔 어느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얘들아 애인 선물 살 때 내 것도 좀 챙겨 주라!' 요즘 아버지 심정이 다들 그럴 것이다.
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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