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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 |
16세기 종교개혁의 발화점은 '면죄부'였다. 부패한 교황청과 로마 가톨릭교회는 재정 적자에 허덕였다. 하지만 교황 레오10세는 성베드로 성당 건축을 포기하지 않았다. 의지가 있으면 길이 열린다고 했던가. 1506년 레오10세는 "누구든지 교회에 기부금을 내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며 대대적인 면죄부 세일에 나섰다. 면죄부를 판매했던 로마 가톨릭교회가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 부활한다면 '코로나 면역부'를 팔려 하지 않았을까. "너의 죄를 사하노라"고 외쳤던 사제들의 주문(呪文)도 달라졌으리라. "코로나19 면역을 허하노라. 전지전능하신 신의 이름으로."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마르틴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는 수도원 수녀였다. 당시 유럽 수도원은 양조장을 대행했다. 양조는 수도원의 중요한 수익원이었다. 수도원을 탈출해 루터와 결혼한 보라는 수도원에서 배운 양조술로 한때 양조장과 맥줏집을 운영했다. 아내 덕에 맛있는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던 루터는 집에 사람들을 모아 종교개혁 담론을 다듬었다. 이를 기술한 책이 '탁상담화'다. 집합의 자리엔 늘 맥주가 있었다. 독일 루터가 발현한 개혁 사상은 스위스의 츠빙글리, 프랑스의 칼뱅을 거치면서 전 유럽으로 퍼졌다. 아내가 빚은 맥주가 없었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불발로 끝났을지 모른다. 맥주를 곁들인 혁신 모임이 거대한 물줄기의 발원지였던 셈이다.
집합 DNA가 살아 있어서일까. 개신교회엔 유독 소모임이 많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소모임이 코로나19 전파의 온상이 됐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종교 분포는 불교 22%, 개신교 21%, 천주교 7%다. 국민 50%는 무교다. 한데 종교계의 코로나 집단 감염은 모두 개신교회에서 발생했다. 불가사의다. 확률의 오류를 인정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비종교인의 종교에 대한 호감도는 불교 25%, 천주교 18%, 개신교 10%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신교를 향한 국민의 시선은 더 따가워졌다. 타락한 로마 가톨릭을 뛰쳐나온 개혁세력이 오늘날 국민 민폐 종교가 될 줄이야.
대구는 사랑의 교회 관련 확진자가 41명으로 늘었다. 지난 3월의 신천지 악몽이 어른거린다. 왜 개신교회는 행정당국의 집합금지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대면 예배를 고집하나. 문재인정부에 대한 항거의 발로인가, 아니면 '헌금'을 포기하지 못하는 현실적 고육책인가, 어렵사리 끌어들인 신도의 와해 우려 때문인가. 대면 예배를 해도 어차피 하나님과의 만남은 비대면 아닌가.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신교 지도자들을 초청한 청와대 간담회 자리에서 한국교회총연합 공동회장인 김태영 목사는 "종교의 자유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며 "대책 없이 교회 문을 닫고 예배를 취소할 수 없다"고 했다. 한데 김 목사가 말하는 목숨이 누구 목숨인지 아리송하다. 대면 예배가 남의 목숨, 국민의 목숨을 위협한다면? 종교의 자유뿐 아니라 모든 자유엔 경계(境界)가 있다. 그 경계를 넘으면 자유는 방임이 되고 민폐가 된다.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이는 사랑제일교회는 경계를 한참 넘었다.
이기적이고 맹목적 신앙은 부패한 로마 가톨릭을 질정(叱正)했던 프로테스탄티즘이 아니다. 루터 정신과 성경의 근본에도 어긋난다. 사악한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가운데서도 일부 개신교회의 일탈과 어깃장은 멈춰지지 않는다. 종교의 길을 잃었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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