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00년 만에 여성에 빗장 푼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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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3   |  발행일 2020-09-23 제27면   |  수정 2020-09-23

우리나라 서원 600년 역사 최초로 여성이 초헌관(初獻官·첫 술잔을 올리는 사람)을 맡게 됐다. 추석인 내달 1일 열리는 안동 도산서원 경자년 추계 향사(서원의 제사)에서 이배용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전 이화여대 총장)이 퇴계 이황 선생의 뜻을 기리는 술잔을 올리게 된 것이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이 별세한 뒤인 1575년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원으로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도산서원 향사 헌관 선정은 도산서원 운영위원회가 덕행과 학행 등 공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 이번에 이배용 이사장이 초헌관이 된 것은 한국의 서원 9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의 주역이라는 점이 고려되었다고 한다. 신위 앞에 따로 술잔을 채워놓는 분헌관도 여성인 이정화 동양대 교수가 참여한다. 여성 헌관의 등장은 시절에 따라 유교도 탄력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 남녀 차별을 없애는 데 '투쟁만이 다가 아니다'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운다.

우리 사회는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 현상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남녀 성(性)대립이 뚜렷해지면서 폭언을 넘은 폭행으로까지 이어져 우려가 적지 않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 차별이 심각한 분야로 남녀 성 문제가 40.1%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남녀 간 성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방법은 '공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남녀 갈등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양성평등을 실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문화와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남녀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도산서원 측의 이번 결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여성에게 닫혀 있던 서원의 문을 연 것이 앞으로 남녀가 상생하며 서로 존중하는 남녀 화합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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