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기행 .3] 영주 소수서원(하)..."교육은 기근 구제보다 급하다" 주세붕의 각별한 서원건립 애정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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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5   |  발행일 2020-10-05 제20면   |  수정 2021-07-05 13:40

도동곡1
소수서원 제사 때 읊는 가사인 '도동곡'. 고려 후기에 발생한 시가인 경기체가 형식으로 되어 있고, 도학(성리학)과 도학을 우리나라에 전한 안향을 찬양하고 있다. 〈소수박물관 제공〉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새로운 교육 과정과 시설을 구축하는 만큼 그 설립자인 주세붕의 서원 건립에 관한 생각과 준비 과정은 각별했을 것이다. 건립 당시 그의 각별한 마음과 노력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을 소개한다. 당시 지식인(선비)들의 가치관과 의식 등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주세붕이 서원을 세운 후 자신의 글을 비롯한 관련 기록을 수집해 엮은 '죽계지(竹溪志)'의 서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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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에 있는 안향 초상화. 현존 국내 초상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로 지정돼 있다. 〈소수박물관 제공〉

◆'죽계지' 서문

1541년 가을 7월 무자일(戊子日)에 내가 풍기에 도착했는데,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었고 다음 해(1542년)에도 큰 기근이 들었다. 1542년에 백운동에 회헌(안향) 선생 사당을 세우고, 이듬해(1543년)에는 향교를 고을 북쪽으로 옮기고 사당 앞에 따로 서원을 세웠다.

<중략> 교육이란 반드시 현인을 높이는 것에서 비롯되므로 사당을 세워 덕 있는 이를 숭상하고 서원을 세워 학문을 돈독히 하는 것이니, 교육은 실로 난리를 막고 기근을 구제하는 것보다 급한 것이다.

<중략> 아, 회옹(晦翁: 주자)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죽계는 바로 문성공(안향 시호)의 궐리(闕里: 공자의 고향으로, 고향을 의미)다. 교육을 세우려고 한다면 반드시 문성공을 높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보잘것없는 몸으로 태평한 세상을 만나 이 고을 군수가 되었으니 고을을 위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마음과 힘을 다해 사당과 서원을 설립하고 토지를 마련하며 경전을 소장하기를 한결같이 백록동서원의 고사(故事)에 따라 하고서, 무궁한 후일에 훌륭한 인물을 기다리게 되었다. 따라서 시기도 돌아볼 겨를이 없었고, 사람들의 믿음 또한 아랑곳하지 않았다.

<중략> 공은 실로 우리나라 도학의 조종이다. 비록 설홍유(薛弘儒: 설총), 최문창(崔文昌: 최치원) 같은 훌륭한 유학자도 그와 흡사하다고 말할 수 없는데, 그 나머지야 어떻게 더 말하겠는가. 아, 공의 사적이 이러한데도 문묘에 종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려사에서 '안모(安某)가 섬학전을 마련한 공으로 문묘에 종사되었다'고 하였으니, 사관의 식견이 비루한 것이 이와 같다. 공의 시에 '곳곳마다 향불 피워 부처에게 빌고(香燈處處皆祈佛)/ 집집마다 피리소리 신을 섬기네(簫管家家盡事神)/ 유독 두어 칸 공자 사당에는(獨有數間夫子廟)/ 봄풀만 가득하고 찾는 이 없어라(滿庭春草寂無人)'고 읊었으니 사교를 배척하고 정도를 걱정한 뜻이 지극하다.

<중략> 공의 학문은 비록 주자에 미치지 못하나 마음은 주자의 마음이기에, 나는 안회헌의 마음을 보려고 하면 마땅히 주자의 글을 보고, 회옹의 얼굴을 보려고 하면 마땅히 회헌의 영정을 보라고 말할 것이다.

국내 最古 '안향 초상화' 봉안
아들 안우기 찬문 써 내력 기록

소수서원 제례때 '도동곡' 불러
주세붕이 창건당시 지은 노래
경기체가 형식 도학·안향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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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지락재에 걸려 있던 백운동서원령 현판. 학생들에 대한 음식 제공, 서고 출입 등에 대한 규정을 기록하고 있다. 〈소수박물관 소장〉

◆안향 초상화에 쓰인 글

소수서원에는 안향 초상화가 봉안돼 있는데, 이 초상화는 우리나라 현존 초상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 제111호로 지정돼 있다. 이 화폭 상단에 안향의 아들 안우기(1265~1329)가 쓴 찬문(撰文)이 있어 그 내력을 알게 한다.

이 초상화는 1318년 고려 충숙왕이 학교를 세운 안향의 공을 치하하며 영정을 그려 문묘에 봉안하고, 고향에 제사를 올리게 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흥주수(興州守 : 흥주는 영주 옛 이름) 최림이 1본을 더 모사해 향교에 봉안했다. 향교에 봉안된 영정은 이후 한양의 대종가로 옮겨졌다가,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우면서 요청하자 안향의 후손 안정이 모시고 내려와 1543년 문성공묘에 봉안하게 되었다.

'지난 연우(延祐) 5년(1318) 2월에 유지(宥旨)가 내렸다. 그 조목에 의하면 '도첨의중찬 수문전 태학사 안향은 학교를 숭상하여 설치한 공이 있으니 공자 사당에 영정을 봉안하고 고향에서 제사를 올리게 하라' 했다. 흥주수 산랑(散郞) 최림이 임금의 유지에 따라 영정 한 벌을 그려 향교에 봉안했다. 당시 사자(嗣子) 우기가 마침 조정의 부름을 받아 변방에 나가 있었는데, 최림이 이를 보여주었다. 이에 향을 피우고 절한 뒤 찬(贊)을 쓴다. 선친께서 예전에 유풍을 진작하신 공으로/ 영정을 그려 문묘에 봉안하라 명하였네/ 한 폭의 진상 고향에서 빛나고/ 사계절 제사 올려 큰 공에 보답하네.

이해 가을 9월 경상전라주도순무진변사 광정대부 검교평리겸판전의사시 상호군 안우기 절하고 쓰다.'

◆450년 이어진 제례악 '도동곡'

소수서원의 제사 의례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절차는 '도동곡(道東曲)'이라는 가사를 부르는 점이다. 주세붕이 소수서원 창건 당시에 지은 노래로, 공자와 주자 등의 도학(성리학)을 칭송하고 그 도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사 때 헌관이 잔을 올릴 때마다 부르는 곡인 이 노래의 형식은 경기체가다.

'초헌: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皇帝), 요순(堯舜)이 하늘을 이어 법을 세우니, 그 광경 어떠한고/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미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하여야만 실로 중(中)을 잡을 수 있네/ 아, 주고받는 성인의 심법이란 다만 이것뿐이로다/ 우탕문무(禹湯文武)와 고이주소(皐伊周召) 군신(君臣)이 서로 만났으니 그 광경 어떠한고.

아헌: 하토(下土)가 아득하니 상제께서 이를 걱정하사 우정대인(공자)을 수사 위에 내리시니/ 만고 연원이 그치지 아니하도다/ 안연의 사물(四物)과 증자의 삼성(三省)이여, 우러러봄에 더욱 높고 뚫으려 함에 더욱 견고하며 앞에 보이는 듯하다가 문득 뒤에 있도다/ 성인을 배우며 수고로움 잊으셨으니, 그 광경 어떠한고/ 따라야 할 것은 하늘이 명한 성(性)이며 함양해야 할 것은 호연지기이고, 정성 다함을 쉬지 않는 것이 근본이니라.

삼헌: 광풍제월(光風霽月) 서일상운(瑞日祥雲), 도통이 끊어진 기나긴 날에 어떻게 아셨을까/ 사람 욕심 걷잡을 수 없어 하늘까지 뒤엎었도다/ 1천500년 만에 주자께서 태어나시어 경(敬)으로 근본 세워 큰 언덕 만드시고, 옛 성인이 이으시고 후학이 열어 주셨도다/ 아 공자와 다를 바 있으랴/ 삼한 천만년에 진유(眞儒)를 내리시니, 소백산이 여산(廬山)이요 죽계수가 염수(濂水)로다/ 학교 일으키고 도를 보호함은 작은 일이겠지만, 주자를 높여 모신 그 공이 크시었다/ 우리나라에도 도가 전해졌으니, 그 광경 어떠한고.'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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