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기행 .7] 논산 돈암서원(하)...눈썹지붕 달고 공중부양…독특한 양식의 거대 강당 '응도당'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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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07 08:09  |  수정 2021-07-06 15:37  |  발행일 2020-12-07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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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 강당 건물인 응도당. 현 위치로 서원을 옮길 때(1880년) 같이 못 옮기고 91년 후에 따로 옮기게 되면서 강당 자리가 아닌 곳에 홀로 서 있다. 송시열 글씨의 편액 '응도당' '돈암서원'이 걸려 있다.

돈암서원에 들어서면 저절로 눈길이 가는 건물이 하나 있다. 왼쪽에 홀로 서 있는 응도당(凝道堂)이라는 강당 건물이다. 서원 건물로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로 규모가 큰 데다 건물 모양도 특이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한옥이 공중에 약간 떠 있는 구조이고, 건물 측면 중간 높이에 눈썹처럼 가로로 길게 붙어 있는 눈썹지붕이 있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양식이다.

응도당은 오래된 건물이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로 만들어져 그 가치가 매우 높아 2008년 이 건물만 보물 제1569호로 지정됐다. 서원에 별 관심이 없어도 이 응도당 하나만 보기 위해서도 돈암서원은 가볼 만하다. 사찰로 치면 화엄사의 각황전이 떠오르기도 한다.

◆보물로 지정된 강당 '응도당'

이 응도당은 옛 돈암서원 시절 사당 앞에 세운 강당이었다. 하지만 1880년 서원의 다른 건물들이 옮겨질 때 함께 옮기지 못했다가 1971년에 옮겨 세우면서 서원의 서쪽 마당에 따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강당 자리에는 양성당이 이미 들어서 있었다.

옛 서원 건물 중 최대 규모인 응도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나 양 측면에 풍판을 달고 풍판 아래에는 눈썹지붕을 툇간처럼 달아냈다. 본채 부분만 보면 앞면이 12.8m지만 양 측면에 눈썹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까지 포함하면 16m나 된다.


모든 서원 건물 중 최대규모…공포·화반 등 조각 매우 세밀
사각형 주춧돌의 상부는 원형으로 다듬어 천원지방 상징화
김장생이 '가례집람'에 정리한 고대 예법 건물양식 실제 적용
'응도당'과 마루 위에 걸린 '돈암서원' 편액은 송시열 글씨



내부는 모두 마루를 깔았다. 후면 양 측면에는 문을 달아 마루방을 꾸몄다. 남쪽에 두 칸, 북쪽에 한 칸을 두었다. 장대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은 기단에서 두 자(60㎝) 정도로 높여 건물 자체가 높게 보이도록 했다. 주춧돌 모양은 하부는 사각형, 상부는 원형으로 다듬어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화했다. 주춧돌 위에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깔았다. 그래서 건물은 주춧돌 높이만큼 공중에 떠 있다. 정면에는 창호를 달지 않고, 측면과 마루방에는 띠살 분합문을 달았다.

이 응도당은 규모가 크면서도 안정감 있게 다가오는 데다 공포(공包)와 화반(花盤) 등 건축 부재들의 조각 수법이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워 건축적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기둥 위 공포와 공포 사이에 있는 화반이 특히 눈길을 끈다. 화반은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얹는 목재)와 창방(기둥과 기둥을 연결해주는 부재) 사이에 끼우는데, 지붕의 하중을 창방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화반이 응도당의 경우 마치 장식을 위해 의도적으로 끼워놓은 듯하다. 조각 수법이 뛰어나고 화려하기 때문이다.

응도당은 기와에 쓰여 있는 명문으로 보아 1633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옥전도(김장생-가례집람)
응도당의 모델인 '하옥전도'. 김장생의 저서 '가례집람'에 실려 있다.

◆고대 예법에 따른 건물

응도당의 특별한 건축적 의미는 김장생이 '가례집람(家禮輯覽)'에서 이론적으로 정리했던, 고대 예법에 따른 건물 양식을 실제로 적용한 사례라는 점이다.

김장생이 현실에 맞게 각종 예법을 정리·편찬한 '가례집람' 내용 중 가옥에 대한 것도 언급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전옥하옥제(殿屋廈屋制)를 참고로 했는데, 이는 신분에 따라 건축형식을 구분하는 규정이다. 기본적으로 천자와 제후의 건축인 전옥, 경·대부·사의 건축인 하옥으로 대별된다. 전옥하옥제는 평면 구성에 대한 방실제(房室制)와 지붕 구성의 차이를 규정한 당우제(堂宇制)로 나뉜다. 그 주요 내용이다.

방실제는 중앙의 실을 기준으로 좌우에 방을 동일하게 설치하는 좌우방제와 실은 서쪽에, 방은 동쪽에만 설치하는 동방서실제로 구분한다. 좌우방제는 제후의 집에 적용되며, 동방서실제는 경·대부·사의 집에 적용된다. 또한 당우제의 주요 내용을 보면 천자·제후의 집은 사주(四注), 즉 사방으로 지붕면을 만든다. 경·대부·사의 집은 양하(兩下), 즉 앞뒤 2면으로만 지붕을 만들도록 한다. 사주로 만든 집은 동서남북 모두에 유를 두고, 양 측면에는 영을 설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유는 낙수받이(처마)를 말하고 영은 눈썹지붕을 말한다.

하옥제도를 본받은 응도당은 실을 가운데 두고 그 좌우에 방을 배치한 동방서실제를 적용하고 있다. 두 방의 동쪽은 거경재, 서쪽은 정의재로 당호를 지었다. 주자의 회당(悔堂) 좌우 협실(夾室) 이름인 경재(敬齋)와 의재(義齋)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강당 내의 좌우 협실에 당호를 내건 것은 이후 서원 건축의 본보기가 되었다.

송시열이 쓴 돈암서원 원정비문(院庭碑文)에도 창건 당시 응도당에 대한 관련 내용이 있다.

'사우 앞에는 오가(五架)의 강당을 두었는데, 고제의 하옥제도를 사용했다. 문원공께서 의례(儀禮)와 주자대전(朱子大全)에서 고찰하고 바로잡아 죽림서원에서 창건한 적이 있다. 지금 한결같이 선생께서 남기신 법도를 따랐으니 방, 실, 당, 서(序), 점(岾), 요, 이, 오(奧), 옥루(屋漏), 의(依), 진(陳), 호(戶), 유가 구비되었다. 이름은 응도라 했다. 상고할 수 없는 고제가 환하게 밝아져서 손바닥을 보는 듯했다. 양 옆에는 재(齋)를 두었는데 왼쪽을 거경(居敬), 오른쪽을 정의(精義)라 했다. 주자의 연처(然處)인 회당(悔堂)의 양협(兩頰) 이름 뜻을 취한 것이다.'

죽림서원은 김장생의 문인들이 주도해 1626년 논산 강경에 건립한 서원이다.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이 배향돼 있다.

◆편액은 송시열 글씨

응도는 '도(道)가 머문다'는 뜻이다. '응도당'과 응도당 마루 위에 걸린 '돈암서원' 편액은 송시열 글씨다.

응도당의 주련은 중국 송나라 범준(范浚)의 '심잠(心箴)' 내용(일부)을 담고 있다. 정면 5칸의 6개 기둥 앞면과 양쪽 끝 기둥의 측면에 하나씩 모두 8개의 주련이 걸려있다. 그 내용이다.

'망망한 천지여 굽어보고 쳐다보아도 끝이 없다(茫茫堪輿俯仰無垠)/ 사람이 그 사이에 가물가물하게 작은 몸을 두고 있으니(人於其間渺然有身)/ 이 몸의 보잘것없음은 큰 창고의 한 톨 쌀알이로다(是身之微太倉제米)/ 하늘과 땅과 함께 삼재가 됨은 오직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爲參三才曰惟心爾)/ 예부터 지금까지 누가 이 마음이 없겠느냐마는(往古來今孰無此心)/ 마음이 물질의 지배를 받으니 마침내 짐승이 되는 것이다(心爲形役乃獸乃禽)/ 오직 입 귀 눈 손 발의 모든 동정이(惟口耳目手足動靜)/ 물욕 사이에 던져지고 끼여서 그 마음의 병이 된다(投間抵隙爲厥心病)'

다음은 나머지 글귀다.

'미약한 한 마음을 온갖 욕심들이 공격을 하니(一心之微衆欲攻之)/ 그 마음 온전하게 보존하는 이 드물도다(其與存者嗚呼幾希)/ 군자가 성심을 보존하며 능히 생각하고 공경하면(君子存誠克念克敬)/ 천군(마음)이 태연해져서 모든 것이 그 명을 따를 것이다(天君泰然百體從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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