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대선공약 시민이 나선다 .2] "중앙정치와 TK기득권이 결탁한 '하향식 공약'은 결국 실패한다"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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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9   |  발행일 2021-10-19 제3면   |  수정 2021-10-19 16:13
지역 대선공약 명암-밀라노 프로젝트와 지방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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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반 '대구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은 밀라노 프로젝트 실패가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2011년 당시 염색산단 전경. 〈영남일보 DB〉


민주화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 가운데 지역공약과 관련해 자주 회자되는 공약은 '밀라노 프로젝트'와 '지방분권'이 대표적이다. 대구경북지역 발전 차원에서 밀라노 프로젝트는 실패한 대선공약이란 평가가 많고, 지방분권은 지역공약이 국가적 대선공약으로 채택된 사례로 꼽힌다. 대선에서 채택된 지역공약이 지역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밀라노 프로젝트와 지방분권 사례를 통해 분석해 본다. 두 사례는 영남일보 '2022년 대통령선거 지역공약정책발굴기획단' 기획위원인 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와 이창용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대표가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 밀라노 프로젝트|
DJ 정치적 계산과 섬유업계 경제적 이익 맞물려 구체화
10년 넘긴 장기사업에도 반성·평가 못하는 금기로 남아

■ 지방분권
TK 등 비수도권 제안으로 공약 채택돼 국정과제화 결실
분권 개헌 재추진에 시·도민 적극적인 관심·의지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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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 개헌 추진에 관한 시·도민의 관심과 적극적인 의지와 참여가 중요하다. 2017년 열린 지방분권개헌추진대구회의 출범식 퍼포먼스. 〈영남일보 DB〉


◆밀라노 프로젝트 유령과 섬유산업의 특권

지난 7일 영남일보에 '대구 섬유패션 관련 연구기관 원장 공백 장기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다이텍연구원,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운영 및 법적 문제로 원장 선임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과 다이텍연구원은 밀라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양대 주관기관이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밀라노 프로젝트 사업 예산을 투입해 조성한 대구 동구 봉무동의 패션어패럴밸리에 입지하는 몇 되지 않는 관련 기관의 하나다.

이들 세 연구기관이 원장조차 선임하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파행은 밀라노 프로젝트의 추진과정에서 시나브로 예견되었던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1997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김대중 후보가 지역 공약에 '세계적인 섬유패션도시 육성'을 포함시킨 것으로부터 출발되었다. 당시 지역의 섬유업계는 산업합리화 업종 지정 기간(1986년 7월~1997년 12월)의 만료에 따라 새로운 지원책을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공약은 대선 과정에서의 정치적 목적과 지역 산업계의 경제적 이익이 절묘하게 일치했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대구지역 섬유산업육성방안(밀라노 프로젝트)'으로 구체화됐다. 이후 1단계 밀라노 프로젝트가 1999년 6천800억원의 예산으로 추진되었고, 2004년 2단계로 1천980억원, 2009년 3단계로 400억원 규모의 예산이 책정되었다. 그러나 10년 이상의 사업 기간과 전례가 없는 대규모의 예산을 투입한 밀라노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한 것으로 귀결됐다.

지역 사회에는 밀라노 프로젝트와 관련해 일종의 암묵적 금기가 존재한다. 그것은 밀라노 프로젝트에 대해 실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취급해 일절 논급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다. 밀라노 프로젝트에 대한 이러한 강요된 침묵은 섬유 산업이 지역에서 누리고 있는 모종의 특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역 섬유산업에 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특권 의식은 밀라노 프로젝트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고 밀라노 프로젝트에 대해 현재의 어떠한 평가나 반성조차 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

정책적 차원에서 말하자면 밀라노 프로젝트의 실패 여부를 단지 대구 섬유산업의 성패에서 찾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태도다. 지역 경제 전체를 두고 볼 때 밀라노 프로젝트 실패의 진정한 대가는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ICT 혁명과 디지털 전환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고 놓쳐버린 혁신의 기회다. 21세기 초반 대구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은 밀라노 프로젝트 실패가 초래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둔 지금 밀라노 프로젝트를 다시 소환하는 것은 그것이 지역 내부에 지속시키고 있는 매우 악성의 이중적 구조 때문이다. 지역 내부적으로는 대선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공약이 특권을 누리는 일부 지역의 기득권 집단과 중앙 정치의 결탁의 결과로 만들어지고, 이렇게 만들어진 공약이 지역의 장기적 발전과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저해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대선 과정에서 지역 공약의 이름으로 제안되는 시혜성의 약속이 중앙정치 혹은 국가주의에 의한 지역의 식민성을 강화하고 내재화시키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최근 OECD 지역정책발전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 정책이 과거의 실수를 벗어나기 위해 메가 프로젝트 등에 기반한 하향식 정책과 지역의 현실과 단절된 인위적인 경제 및 기술 집적지의 조성을 피하고 다층적인 거버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역 정책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밀라노 프로젝트의 추진 과정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중앙 정치와 지방 경제가 나쁜 거버넌스의 형태로 악성적으로 결합하는 상황을 탈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대와 달리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지방분권

지방분권은 IMF 외환위기로 인해 비수도권 지방이 빈사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심각한 경제사회 위기를 극복할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지방분권은 대구경북을 비롯한 지방에서 제안하고 대선공약으로 채택된 대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역대 정부 중에서는 참여정부와 문재인정부가 이를 대선공약으로 채택하고 국정과제화했다.

아무튼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등이 주도하는 지방분권국민운동과 이회창, 노무현, 권영길 대선후보가 지방분권 대국민협약을 체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공약한 대로 대구경북과 비수도권에서 제안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이 국정과제로 반영돼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신행정수도 건설을 동시에 추진되었고,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공공기관 이전정책이 추진되었다. 2003년 12월 말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등이 제정되었고 대통령 자문기구인 지방분권정부혁신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발족을 통해 이전의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비수도권 지방을 중시하는 지방화정책이 추진되었다. 대통령이 직접 지역을 순회하면서 추진을 독려했고 비수도권에 혁신도시 건설을 속도감있게 추진했다.

그러나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한을 이양하는 지방분권정책은 기대와는 달리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중앙과 지방정부 혁신을 먼저하고 지방분권을 하겠다는 참여정부의 방식은 결과적으로 지방분권 추진을 가로막았다. 지방분권이 되어야 정부혁신이 가능한데, 참여정부의 정책판단 잘못과 관료의 저항으로 정부혁신도 되지 않았고 권한이양 또한 구두선에 머물고 말았다.

2017년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대선후보 등 여야 대선후보들과 전국적 분권연대기구인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가 지방분권 개헌 국민협약을 체결했다. 국민의 촛불혁명에 기대어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과감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 추진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하고 국정과제화했다. 지방분권 개헌도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정책 추진은 레토릭에 불과했고, 지역발전에 별 도움이 안되는 저급한 수준의 자치분권을 내용으로 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을 하면서 이른바 자치분권의 르네상스시대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 정부 스스로 자신의 자치분권 추진을 대단한 업적으로 포장하기 바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다수당인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심의조차 하지 않아 폐기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는 했지만 지방분권 개헌 추진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했고 야당은 당리당략에 빠져 개헌에 동조하면 여당에 완전히 밀린다고 생각했다.

지방분권은 과도한 권력집중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국가운영체계를 혁신하기 위한 것이다. 지방분권이 주민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면 지역발전뿐만 아니라 권력기관 통제, 심각한 정치·사회갈등 해결, 국가예산 낭비와 부정부패 근절, 경제 양극화 완화, 새로운 국가성장동력 창출, 지역소멸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선진분권국가의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이 산업화시대에 이어 지식정보화시대, 4차산업혁명시대에도 대한민국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주민의 권한을 강화하는 동읍면자치제 도입과 함께 자치법률제정권을 골자로 하는 지방분권 개헌 추진에 관한 시·도민의 관심과 적극적인 의지와 참여가 중요하다. 내년 20대 대선에서 시·도민의 지방분권 공약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다면 대구경북이 도약할 기회가 성큼 다가오게 될 것이다.

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이창용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대표
정리=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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