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시민이 11월부터 받은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통령 후보의 '투표독려' 전화. <독자 제공> |
최근 정치인들의 '투표 독려 전화'에 A씨처럼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가수 김필은 지난 1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통화기록을 캡처해 올린 뒤 "제발 전화 그만해주세요. 후보님"이라고 적기도 했다. 캡처된 번호는 허 후보의 투표 독려 전화번호다.
수신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발신
스팸차단앱에 최대 2121번 신고
연예인도 "그만해달라" 호소
합격 전화 기다리는 수험생 등
중요업무 놓쳤단 피해사례 불구
선거법·개인정보법 문제없어
비슷한 선거홍보 늘어날 전망
18일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통령 후보의 이름을 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자 '허경영 전화' '허경영 전화 차단' 등이 연관 검색어로 등장했다. 스팸차단 앱 '후스콜'에 따르면, 허 후보의 투표 독려 전화번호 중 8개 번호는 각각 적게는 76번, 많게는 2천121번 신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피로감을 넘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말 2022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추가합격 전화를 기다리던 수험생들의 성토가 있었다. 지역 번호 '0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 탓에 서울권 대학에 지원한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었다.
온라인상에는 병원 응급실 등으로도 전화가 간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대구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한 회원이 "선착순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투표 독려 전화 때문에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투표 독려' 전화를 거는 대선 후보가 허 후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대구 시민은 "최근 한 대선 후보로부터 홍보 전화를 받았다. 허경영 후보랑 전화번호가 달라서 진짜 일반 전화인 줄 받았는데 아니어서 짜증이 났다"고 했다.
오는 3월 대통령 선거와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비슷한 방식의 홍보를 하는 후보가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
투표 독려 전화는 불법이 아니다. '선거 유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58조의 2는 "누구든지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대상도 아니다.
더욱이 허 후보의 투표 독려 전화는 '임의로 전화를 거는 방식'(RDD)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에서 흔히 활용하는 방식이다.
허 후보는 최근 유튜브 채널 '진용진'에 출연해 "합법적으로 했다. 전문적인 곳에서 용역을 썼다. 전화번호를 1번부터 9번을 합법적으로 컴퓨터로 만들어서 자동으로 나가는 것"이라며 "항의 전화는 거의 없었다. 내 번호는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즉 '랜덤' 전화번호로 전화가 가기 때문에 '개인정보 불법 수집'이 아니라는 것이다.
변영학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선거법은 정치인이 시민에게 접촉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엄격히 규제하는 편"이라며 "그래서 후보들이 이런 틈새를 노리곤 한다. 행간의 뜻은 다를지언정 형식적으로는 문제없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규제할 필요없다고 본다. 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에 대해 규제하고, 다른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또 그 부분에 대해 규제하다 보면 점점 더 엄격해진다. 정치적으로는 '반정치적'인 방향"이라고 했다.
선거 출마 경험이 있는 정치인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대구의 한 기초지자체 의원 A씨는 "비대면 선거운동이 권장되는 시기에 전화만큼 후보 이름이 각인되는 방법도 없다"며 "너무 과하면 문제지만 적당한 선에서 PR하는 게 나쁘다고 보이지 않는다. 여건만 된다면 하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기초의원 B씨도 "현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은 자기 선거운동을 할 여력이 안 된다"며 "본격 지방선거 시즌이 오고, 자신을 알릴 기회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합법적인 선에서 전화를 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C 기초의원은 "직접 통화하는 것도 아니고 녹음을 틀어주는 것이라면 효과도 그다지 없다고 본다. 주민들이 녹음 전화를 정말 싫어한다"며 "정치 신인이라면 몰라도 이미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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