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일 시행 '재해법' 범법자 양산 우려…현장 다시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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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26   |  발행일 2022-01-26 제27면   |  수정 2022-01-26 07:10

문재인정부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 '선의'와 '현장'과의 괴리가 항상 논란이다.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정책의 취지는 좋으나 그 성급함과 현장에 대한 몰이해로 '예상 수혜자'에게조차 불이익을 초래함으로써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음을 곱씹어봐야 한다. '의로운 가치'에 갇힌 진보의 약한 고리다. 내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 또한 마찬가지다. 산업 현장의 안전을 확보할 전기(轉機)가 되기에 충분한 법적 장치다. 그러나 현장은 과연 준비돼 있는가. 자신 없다. 자칫 범법자만 양산하거나 여불여무(有不如無·있으나 없는 것과 같음)한 규제로 법이 사문화되기 십상인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6개월여간 건설·제조업 등 사업장을 일제 점검했다. 기본 안전수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업장이 63%나 됐다. 현장의 준비가 이런 처지다. 1년 전 중대재해법 통과 후 기업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준비해온 것은 사실이나 현장은 여전히 안전과 거리가 멀다.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CEO를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법임에도 적용 범위, 책임 소재 등이 모호한 것도 문제다. '경영 책임자' 범위는 또 어디까지인가. 준수해야 할 내용도 불분명하다. 원도급과 하도급의 책임 소재도 명확지 않다. 벌써 기업은 오너 보호용 '최고안전책임자' 자리를 신설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기업 애로사항 듣기를 주저 말아야 한다. 대기업은 돈·인력이라도 있지, 중소기업에겐 중대재해법이 더 무섭다. 법을 완벽히 준수할 자신이 있는 중소기업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그러니 "사업하다 구속되느니 차라리 접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고는 사고대로 나고 범법자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져선 안 된다. 지킬 수 없는 법은 법이 아니다. 현장안전의 책임과 의무가 어찌 사업주에게만 있는가. 경영책임자·근로자·정부 관계당국도 책임 없다 못 한다. 한쪽 처벌만으로 중대 재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법 시행 이후라도 기업과의 소통을 통해 법의 허점을 메우는 데 게을리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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