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피플] 홍장표 KDI 원장 "소득주도 성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 강승규,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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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28 11:31  |  수정 2022-04-12 10:20  |  발행일 2022-03-02 제14면
홍장표
홍장표 KDI 원장이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 원장은 사진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었고, 인터뷰를 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세계 경제가 어수선하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 경제에도 불똥이 튀지 않을 리 없다. 도대체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홍장표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을 만나 한국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7일 세종시에 위치한 KDI를 찾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구에서 KDI까지 가는 데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KTX 오송역에 내려, BRT 노선의 B1 버스를 타면 된다. KDI 1층 로비에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KDI 개관을 기념해 쓴 '번영을 향한 경제 설계'이다. 장혁순 KDI 대외협력실장은 "감정을 받은 결과, KDI 건물에 걸려 있는 미술작품 가운데 가장 비싸다"고 했다.


홍 원장은 지난해 5월 제16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말이 많았다. 홍 원장의 이력 때문이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홍 원장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의 설계자이다. 스스로도 논란을 잘 알고 있다. 홍 원장은 "어디 가더라도 소문이 금방 났다. 청와대 갈 때도 그랬고, 소득주도 성장 특위에 있을 때도 논란이 됐다. 이상하게 좋던 싫던 화제의 인물 비슷하게 됐다"라며 웃었다.


홍 원장은 대구 출신이다. 대구 달성고를 졸업했다. 홍 원장의 모친이 수성구 시지에 살고 있다. 친형은 대구에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전세계 유례가 없는 듣도 보도 못한 정책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실험실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소득주도 성장의 배경은.


"소득주도 성장 이론이나 정책 체계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절대 아니다. 뿌리는 거시경제학을 만들었던 케인스까지 간다. 중요한 분수령도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IMF(국제통화기금), 월드뱅크에서 나왔던 얘기인데, 성장과 분배를 대립적으로 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또, 수출과 내수 가운데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다는 흐름이 있었다. 그런 흐름 속에 문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른 정책을 새롭게 추진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유례없는 정책이라는 비판은 정치적 공방으로 이해한다."


홍 원장이 거론한 케인스(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영국의 경제학자로 거시경제학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스로 소득주도 성장을 평가한다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아쉬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많은 분이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을 최저임금이라고 이해하는데,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다만 소득주도 성장은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경제 패러다임에서 투자, 수출 못지않게 소비와 내수가 중요하다. 성숙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출과 더불어 튼튼한 내수 시장이 필요하다. 세계화의 속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터지고 역세계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나치게 수출 하나에만 의존했을 경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충격에 완전히 노출 된다. 내부의 성장 기반은 당연히 내수이고 서비스 시장이 앞으로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제조업 기반에 서비스를 접목해야 하는 과제를 감안하면 (소득주도 성장은)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이다."


▶절반의 아쉬움은 뭔가.
"최저임금 정책이 자영업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게 아쉽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일부 부작용이 있었다. 특히 고용을 하는 자영업자들이 부담을 갖게 되면서 속도 조절이 불가피했다. 최저임금은 올리되 대대적인 자영업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어려움들을 다 커버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성장과 분배 중 성장 파트와 관련해 분수령에 와 있다. 특히 성장 잠재력의 지속적인 저하가 예상된다. 빠른 고령화와 저출생이 성장 잠재력 저하를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인데,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출생 고령화에 대응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 사회, 문화 모두 바뀌어야 한다. KDI가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을 연구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일본의 경제 구조와 다르기 때문에 일본의 정책을 100% 답습할 수 없다. 단시간 내에 출생률 저하를 막기는 어렵다.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서 잠재 성장률을 높이려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생산 현장에 관여하지 않은 분들을 유인한 것이다. 여성과 은퇴한 고령층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다만, 준비가 덜 돼 있기 때문에 교육 훈련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초중고, 대학을 나오면 끝이 돼서는 90세까지 버틸 수 없다. 평생 교육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교육의 투자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홍 원장은 최근 내국세의 20.79%가 연동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의 구조 개편을 주장, 교육계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미국와 중국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코로나 펜데믹부터 이야기해야 되겠다. 코로나 팬데믹은 대통령께서 표현하셨듯이 전례 없는 위기였다. 위기 속에 발견된 게 국민적 단결력이었다. 정부 정책에 불만도 있겠지만, 큰 틀에선 굉장히 협조적이었다.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경제 회복 속도가 빠르다. 회복이 빠르면 기회가 온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도 마찬가지다. G2의 갈등 국면에는 양면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미국과도 잘 협력해야 하고,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한다. 원자재나 소재 부품에서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요소수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중국에서 예상치 못한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우리한테 충격이 온다. 리스크 요인인데, 반면에 기회 요인도 왔다. 외교관들 얘기를 들어보면 백악관에서 한국의 우선 순위가 급부상했다. 반도체, 2차전지 등 미국이 필요한 것을 한국이 갖고 있다. 한국의 지위가 높아졌다. 중국과의 관계는 협력 관계이면서 동시에 경쟁 관계이다. 지금 미국은 중국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핵심 기술을 못 쓰게 한다. 우리한테는 나쁘지 않은 좋은 기회인 셈이다."

 

액자
KDI 본관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액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번영을 향한 경제설계'라는 붓글씨 작품이 담겨 있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찮은 것 같다.
"인플레이션이 새해 경제의 화두가 됐다. 초기에는 일시적 공급망 혼란으로 봤는데, 점점 나아가 이제는 에너지 문제로 넘어갔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의 불확실성 때문에 유가가 단기에 안정화되기 힘들다. 모든 나라가 에너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중국은 화석 연료를 감축하고 있고, 유럽은 풍력 발전량 감소와 천연가스 공급 부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의 가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는 느리다. 인플레이션 문제는 이런 것들이 잠재돼 있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단 비축 물량을 늘려야 한다. 외교도 엄청나게 중요해졌다. 중국은 인프라를 깔아주고, 일본은 원조사업을 통해 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취임하고 부동산 연구팀을 만들었다. 과제는 뭔가. 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성적을 평가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요인은 복합적이다. 공급 부족 문제도 없지 않았지만, 부동산 수요관리 정책과 관련해 아쉬움이 있다. 코로나19로 돈이 풀리고, 저금리가 되는 상황이 집값을 부추길 수 있는데, 유동성 관리 대책이 미흡했다. 대출 규제 정책도 좀 더 빨리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집값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인데, 국민과 공유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부동산 연구팀을 출범하게 됐다. 국토연구원, 조세연구원 등 외부와의 네트워크도 늘릴 생각이다."


▶KDI 수장으로서 각오를 말해달라.
"지난해 KDI는 50주년이고, 올해는 새 50년의 원년이다. 한국 경제, 사회가 어디로 가야 될 것인지, 큰 그림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 아젠더 제시와 헤쳐나가야 할 문제 등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제시할 생각이다."


홍 원장은 지난해 11월 KDI의 기존 연구조직을 '3부 3실 1센터 4팀'으로 개편했다. 부동산연구팀, 플랫폼경제연구팀, 인구구조대응연구팀, 미래전략연구팀이 신설됐다.


글·사진=조진범 논설위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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