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12경, 색다른 매력에 빠지다] (3) 조선 중기 서원 건축의 정수 도동서원…극도의 절제 美…한훤당 선비정신 깃든 '조선 성리학의 산실'

  • 박종진,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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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14 07:36  |  수정 2022-06-09 10:32  |  발행일 2022-04-14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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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루에서 바라본 도동서원. 환주문 뒤로 서원의 중심이자 강학 공간인 중정당이 보이고, 왼편에는 유생들이 생활했던 거인재가 위치해 있다.

대구 달성이 관광 명소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다양한 역사·문화유산을 지니고 있어서다. 달성에는 선사시대부터 삼국·고려·조선시대를 거쳐오며 남긴 선조들의 소중한 유산이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달성은 '선비의 고장'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유교 유산을 품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동서원이 대표적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서원에는 인격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에 매진하던 선비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달성 12경, 색다른 매력에 빠지다' 시리즈 3편에선 조선 중기 서원 건축의 정수로 불리는 '도동서원'에 대해 소개한다.

진등산 북쪽 기슭 고풍스러운 기와집
집채만 한 은행나무 '위엄'에 압도
주요 건축물 일렬로 반듯하게 자리
중용의 철학 담은 강학공간 중정당
학문 매진하던 선비 흔적 고스란히
구성·형태 뛰어난 서원 담장도 눈길

◆공자를 머리에 이고 있는 산

달성 현풍읍과 구지면 경계에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하나 있다. 대니산(戴尼山)이다. 오산리에서 높게 솟아오른 봉우리는 서북 방향으로 뻗어 낙동강이 곡류하는 도동리에서 멈춘다. 주변이 낙동강을 낀 평지가 대부분이라 산에 오르면 시야가 넓다. 동쪽으로는 비슬산, 서쪽으로 가야산 조망이 가능하다. 대니산은 예로부터 태리산·제산·금사산·솔례산·구지산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니산이란 이름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이 지었다는 설이 있다. 머리에 일 대(戴)와 공자의 자인 중니(仲尼)의 니에서 따왔다. 공자를 머리에 이고 있는 산이란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산골짜기마다 유교와 관련된 유산이 빼곡히 자리한다. 대니산 반경 4㎞ 거리 안에 서원과 향교는 물론 여러 문중의 세거지·종택·정려각·누정·재실 등이 둥지를 틀고 있다. 좁은 지역에 이처럼 다양한 유교 문화유산이 집중돼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흔치 않다. 불교 문화가 비슬산을 중심으로 꽃을 피었다면 대니산은 지역 유교 문화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더욱이 대니산에는 유교 문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서원만 5곳에 이른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립 중등교육기관으로 유교 문화를 사회화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시대 각 지방 고을마다 유교 문화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데는 서원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도동서원도 대니산 끝자락에 위치한다. 김굉필은 정몽주(鄭夢周)에서 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을 거쳐 조선 성리학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평생 '몸가짐을 바로 세우는 일'에 몰두하며 성현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도동서원은 그의 참된 정신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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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당에는 서원 편액이 안쪽 벽면과 앞 처마 두 곳에 걸려 있다.

◆공자의 도가 깃든 서원

현풍읍에서 낙동강을 오른편에 끼고 한적한 도로를 따라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봄 풍경이 평화롭다. 양파와 마늘이 빚어내는 색감이 싱그럽다. 이에 질세라 청보리도 짙은 녹색을 뿜어낸다. 낙동강 자전거길 따라 벚나무도 연분홍 고운 자태를 뽐낸다. 풍광에 취한 것도 잠시, 곧 갈림길이 나타난다. 도동터널을 통해 바로 서원으로 가거나, 옛 고갯길로 천천히 둘러갈 수 있다. 지체 없이 차 머리를 고갯길 쪽으로 돌린다. 이내 U자로 굽은 여수골이 나타나고, 오르막의 끝에 다다른다. 해발 250m 다람재다. 도동터널이 생기면서 통행량이 급격히 줄었다. 차량 대신 자전거로 고갯길을 오르는 이가 더 많을 정도다.

다람재 정상에는 정자와 한훤당의 시비가 당당히 서 있다. 정자에 올라서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고령 개진면 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온함 그 자체다. 멀리 서쪽으로 가야산과 개경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왼쪽 발아래 쪽으로 멀리 보이는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눈길을 끈다. 진등산 북쪽 기슭에 터 잡고 있는 도동서원이다. 도동서원 앞 나루의 모습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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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굉필의 외증손 정구가 서원 중건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은행나무.

고갯길을 지체 없이 내려오면 이내 도동서원 주차장에 이른다. 가장 먼저 집채만 한 은행나무가 낯선 이를 반긴다. 풍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에 압도되는 기분이다. 웅장한 생명력은 가지마다 무수한 싹을 틔워냈다.

이 나무는 한훤당의 외증손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서원 중건을 기념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동서원은 원래 쌍계서원(雙溪書院)으로 불렸다. 1568년 현풍 비슬산 기슭 쌍계동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됐고,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재건 당시 '보로동서원(甫勞洞書院)'으로 불리다 1607년 '도동서원'으로 사액 받았다. 도동(道東)은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극도로 절제된 아름다움

찬찬히 서원을 둘러본다. 낙동강과 진등산,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둥지를 틀었다. 주요 건물은 중심축을 따라 경사면에 반듯하게 자리 잡았다. 수월루와 환주문·중정당·내삼문·사당이 일렬로 위치한다.

환주문은 맞담에 세워져 있다. 성인이 드나들기엔 문 높이가 낮다. 갓 쓴 유생이라면 고개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구조다. 입구에서부터 예를 갖추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환주문을 지나 서원의 중심이자 강학 공간인 중정당을 만난다. 극도로 절제된 미를 느낄 수 있다. 중정(中正)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중용(中庸)의 상태를 뜻한다. 도동서원의 교육 철학이자 교훈이다. 중정당에는 서원 편액이 안쪽 벽면과 앞 처마 두 곳에 걸려 있다. 벽면 편액은 선조가 내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강이 스승 퇴계의 글씨를 집자했다고 한다.

중정당은 정면 5칸·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다. 특히 전면에 굵은 민흘림기둥 여섯 개가 눈길을 끈다. 크기도 큰 데다 기둥 윗부분에 둘려진 흰 종이 때문이다. 이른바 '상지(上紙)'다. 도동서원 유사들에 따르면 상지의 역할은 이곳이 경의를 표해야 할 곳임을 알게 하는 표식이다. 서원 아래 낙동강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도 상지를 보면 예를 갖췄다고 한다.

도동서원의 미(美)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중정당 기단이다. 모양과 재질이 서로 다른 돌들이 4각형·6각형·8각형 등의 모양으로 다듬어져 빈틈없이 맞물려 있다. 색상도 옥빛·흙빛·분홍빛·회색빛 등 제각각이다. 기단 중간중간 머리를 내밀고 있는 네 마리 용도 눈길을 끈다. 기단을 자세히 보면 오른편 계단 옆엔 위쪽을, 왼쪽 계단 옆엔 아래쪽을 향하고 있는 동물(다람쥐)을 볼 수 있다. 이는 '동입서출'. 들어가고 나오는 방향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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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작지붕을 올린 수월루는 유생들의 휴식처나 강독 공간으로 사용됐다.

◆오직 동문만 이용하는 사당

중정당 좌우엔 거인재(居仁齋)와 거의재(居義齋)가 마주 보고 있다. 서열이 높은 유생들은 동재(거인재)에, 그보다 어린 유생들은 서재(거의재)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두 건물을 자세히 보면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둥근 기둥과 사각 기둥·창의 유무 등을 볼 때 거주인의 지위차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거인재는 현재 보수 공사 중이다.

내삼문으로 향하자 낯선 광경이 펼쳐진다. 사당으로 향하는 세 개의 문 중 서문 쪽 계단이 없다. 귀신이 출입하는 중앙문(귀문)을 제외하고, 보통은 동문으로 들어간 뒤 서문으로 나오지만 이곳에선 동문을 출입구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동입동출'. 동쪽을 유독 중요시하는 도동서원만의 정체성이다. 계단 양쪽에는 화왕(花王), 모란이 심겨 있다. 모란이 꽃망울을 터트리면 서원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한층 더해진다. 특히 비가 온 뒤 중정당에 불을 지피면 바닥 쪽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계단을 가득 메워 모란과 사당이 구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사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한훤당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오른쪽에는 서원 건립을 주도한 한강의 위패도 배향돼 있다. 사당 내부 좌우 벽면에는 세월을 거스른 듯한 벽화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색이 너무나 선명하다. 벽화는 한훤당의 시 '선상(船上)'과 '노방송(路傍松)'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이 벽화는 사원 중건 당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원 담장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중정당, 사당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다. 산석으로 쌓은 뒤 흙과 기와를 사용해 담장을 이었는데, 형태와 구성이 뛰어나고 아름답다.

글=박종진기자 pjj@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자문=송은석 대구문화관광 해설사
공동기획 : 달성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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