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12경, 색다른 매력에 빠지다] (4) 인흥마을과 마비정 벽화마을…영남 양반가옥 고졸미에 흠뻑…나지막한 담벼락 벽화 보며 시간여행

  • 박종진,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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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8 07:35  |  수정 2022-06-09 10:32  |  발행일 2022-04-28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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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화원읍 본리리에 자리잡은 인흥마을은 남평문씨 세거지로 영남지방 양반가옥의 고졸미를 느낄 수 있다. 여느 한옥에 비해 담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대구 달성의 다양한 매력 중 하나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대규모 산업단지와 논과 밭, 공동주택 지구와 자연마을이 혼재해 있다. 젊고 역동적인 신도시이면서 전통의 삶과 역사·문화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특히 달성은 자연마을, 즉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촌락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수만 무려 290여 개에 이른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된 현대 사회에서 자연마을은 특별함을 갖는다. 역사와 전통이 깃든 마을 고유의 문화, 공동체 의식은 지역의 유산이자 도시 자산이다. '달성 12경, 색다른 매력에 빠지다' 시리즈 4편에선 지역 대표 관광명소로 발돋움한 인흥마을(남평문씨 세거지)과 마비정 벽화마을을 소개한다.

사계절 꽃 사진 찍기 좋은 인흥마을
고즈넉한 한옥 9채·정자 2채로 구성
문익점 동상·연못있는 인흥원도 볼거리

마비정 마을 곳곳 옛날 시골정취 가득
벽화들 소품과 어우러져 색다른 재미
둘레 2m 옻나무 뒤편엔 전망대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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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흥마을 입구에 있는 문익점 동상. 동상 뒤로는 목화밭이 조성돼 있다.

◆인흥사 터에 보금자리 튼 남평문씨

달성 화원읍에 자리 잡은 인흥마을은 계절별로 꽃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봄에는 매화와 산수유, 여름에는 능소화와 목화꽃이 만발한다. 늦봄에 피는 찔레꽃도 빼놓을 수 없다. 운이 좋으면 수줍게 꽃 핀 모란과 노랑 해당화도 즐길 수 있다. 계절별로 꽃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마을의 고즈넉한 정취 덕분이다. 남평문씨 세거지인 인흥마을은 아홉 채의 한옥과 정자 두 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건물 배치가 계획적이고, 영남지방 양반가옥의 고졸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여느 가옥과 달리 담장이 높아 신비감마저 든다.

문익점의 후손들이 화원 본리리에 세거지를 형성한 것은 19세기 중반쯤이다. 대구 입향조인 문세근(文世根)의 9대손 문경호(文敬鎬)가 터를 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수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그는 인흥사(仁興寺)가 있던 자리를 새 보금자리로 택했다. 일연 선사의 자취가 남아 있는 인흥사 터를 후손들이 대대손손 번창할 '길지(吉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인흥사는 창건 연대와 창시자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일연 선사가 1274년(충렬왕 즉위년)에 중수해 인흥사로 개칭했고, 임진왜란 당시 소실돼 폐사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인흥마을에는 아직도 인흥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견뎌낸 3층 석탑이 건재하고, '고려정(高麗井)'이라는 우물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문경호의 바람대로 남평 문씨는 인흥마을로 거처를 옮긴 뒤 번성했다. 특히 문경호의 손자인 후은(後隱) 문봉성(文鳳成) 대에 이르러 막대한 부를 쌓았다. 문봉성은 후학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광거당(廣居堂)을 조성한 뒤 서고를 두고 공부를 하고 싶은 선비에게 언제나 문을 열어줬다. 누구든지 광거당에 머물며 수학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당시 인흥마을은 유학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아들인 수봉(壽峰) 문영박(文永樸)도 부친과 뜻을 함께했다. '인수문고'의 전신인 '만권당'을 세우고 도서를 수집했다.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의 발로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교육을 통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남평문씨 문중서고인 '인수문고(仁壽文庫)'에는 고서만 8천500여 책이 보존돼 있다. 그는 또 독립운동 조직이나 단체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10여 년간 소리소문없이 자금을 후원했다.

◆정겨운 흙돌담길과 고졸미 넘치는 가옥

인흥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가장 먼저 문익점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동상 뒤로는 목화밭이 조성돼 있다. 조금은 황량한 목화밭 옆으로 매화나무마저 초록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인흥마을 주변에는 수령 20~30년 남짓 된 매화들이 군락을 이룬다. 온통 붉은 홍매, 꽃받침이 붉고 꽃잎이 하얀 백매, 꽃받침이 푸르고 꽃잎이 하얀 청매 등 매화의 종류도 8가지나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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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흥원 연못에는 두 개의 섬이 있고, 소나무와 매화나무가 멋드러지게 서 있다.

마을 구경에 앞서 인흥원(仁興園)부터 들른다. 연못이 있는 정원이다. 연못 가운데 솟은 두 개의 섬에는 소나무와 매화나무가 멋드러지게 서 있다. 근엄한 모습의 소나무는 비보숲에서 가져 온 개체다. 인흥마을은 주산인 천수봉과 안산인 함박산, 천내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화원읍 방향은 그대로 뚫려 있어, 겨울바람이 여간 세찬 게 아니다. 이에 소나무로 비보숲을 만들었다.

정원에는 패랭이꽃을 닮은 꽃잔디가 지천이다. 수국과 버드나무도 한껏 물이 올랐다. 정원을 한 바퀴 돌아 마을로 들어선다. 반듯한 흙돌담길이 정겹다. 골목엔 담장 넘어 빼곡히 얼굴을 내민 찔레와 능소화가 낯선 이를 반긴다. 성미 급한 찔레꽃 두 송이는 이미 꽃망울을 터트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찔레향이 그대로 전해진다. 마을에는 내부를 들여 다 볼 수 있는 건물이 따로 있다. 세거지의 첫머리에 위치한 수백당(守白堂)도 그중 하나다. 수백당 마당에는 소나무 두 그루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소나무 아래 큰 돌에는 거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장수를 기원한 문양일까? 화재를 막는 부적일까?

수백당은 정면 6칸·측면 2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이다. 마루가 발달된 구조로 정갈하면서 기품이 느껴진다. 수백당 뒤편에는 보기 드문 노랑 해당화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돌길을 따라 협문을 통과하면 인수문고가 나온다.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으로서는 가장 많은 서책과 책판이 보관돼 있다.

마을 맨 오른편 나지막한 언덕에는 광거당이 자리 잡고 있다. 'ㄴ'자 모양의 헛담을 뒤로 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거당의 모습이 너무나 평온하다.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문인·학자들이 학문과 예술에 대해 토론하던 모습이 눈에 겹친다. 누마루에는 추사가 적은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집이란 뜻이다. 세월이 흘러 연못은 메워지고 없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여전하다. 특히 담장 밖 소나무를 병풍처럼 두른 광거당의 모습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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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정 마을 벽화 일부는 입체감 있는 '트릭아트'를 활용해 색다른 재미를 준다.

◆1960~70년대 그때 그 시절로의 시간여행

인흥마을에서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마비정 마을이 나온다. 늦봄의 기운이 싱그럽다. 푸르름이 한결 진해진 기분이다. 갈림길에서 차를 왼쪽으로 돌린다. 이내 주차장에 이른다. 주차장 한편에 늠름하게 서 있는 두 마리 말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마을 이름의 유래와 관련 있는 천리마 '비무'와 암말 '백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전설에 따르면 천리마 대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암말을 불쌍히 여겨 마을 주민들이 마비정(馬飛亭)을 짓고 추모하게 됐다고 한다. 또 암말의 목을 벤 장수가 정자를 세웠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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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도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본격적인 마을 탐방에 나선다. 첫 번째 벽화부터 정겨움이 묻어난다. 개구진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얕은 오르막을 천천히 오르면 1960~1970년대 시골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나지막한 담벼락과 건물 벽마다 그때 그 시절 정겨운 모습들이 아로새겨있다. 마을 벽화 중 상당수는 입체감을 더해주는 소품과 '트릭아트'로 색다른 재미를 준다. 마을회관 쪽으로 가면 움직이는 듯한 누렁소도 만날 수 있다. 아래쪽에서 보면 소가 밑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고, 오르막을 오르면 소가 앞으로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외에도 마을 곳곳에는 옛날 시골의 정취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장독대와 메주·호박넝쿨·동심·다람쥐와 목련·오후의 낮잠 등 주제도 다양하다.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눈에 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접시꽃이 만개해 시골 분위기가 더욱 짙게 느껴진다. 무궁화를 닮은 접시꽃은 여러해살이풀로 6~7월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담벼락을 타고 이리저리 뻗어 나가는 담쟁이덩굴의 모습도 정감 넘친다.

연리목도 만날 수 있다. 마을 입구에서 오르막을 따라 걷다 보면 첫 갈림길에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나무와 나무, 가지와 가지(연리지), 뿌리와 뿌리(연리근)가 서로 엉켜있는 연리목이다. 마을 오른쪽 귀퉁이에는 옻나무가 위풍당당하다. 둘레가 2m에 이른다. 옻나무 뒤편에는 전망대가 위치하고,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마비정누리길도 즐겨보자. 길은 마비정~삼필봉~남평문씨 본리 세거지~화원자연휴양림~대구수목원으로 이어진다. 경사가 완만해 걷기도 수월하다.

글=박종진기자 pjj@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자문=송은석 대구문화관광해설사
공동기획 : 달성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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