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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과의 괴리감
흔히 몽상가를 얘기할 때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를 원용한다. 그리그의 그 유명한 '솔베이그의 노래'도 '페르귄트 모음곡' 중 하나다. '페르귄트'가 없었다면 작곡가 그리그도 양명(揚名)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몽상가 기질이 다분하다. 취임 초 영화 '판도라'를 보고 탈원전을 결심하고, 분배를 강조한 장하성 교수의 저서에 꽂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발탁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들 북한의 비핵화를 믿지 않는데도 계속 종전선언에 매달린 걸 봐도 그렇다. 문 전 대통령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랬지만 종전선언은 결코 북한 비핵화의 입구가 될 수 없다. 외려 북이 유엔사 해체를 요구할 빌미만 제공한다. 종전선언은 비핵화와 병행해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주엔 "김정은이 매우 솔직하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52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전력을 강화해온 북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의아하다. 미몽을 헤매는 건가.
# 의뭉스러운 건가 눙치기 인가
부동산 실패에 대한 시각도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서울 강남 아파트가 5년간 두 배나 올랐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승폭이 작다"는 변명이 나올까. 3·9 대선을 두고선 "링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패배를 얘기 한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의뭉스러운 건지 눙치기 인지 종잡을 수 없다. 선거법상 대통령은 링에 오를 수 없다는 것도 모르나. 윤석열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을 딱 한 명만 지목하라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문 전 대통령을 꼽겠다. 부동산 폭등으로 서울 표심이 돌아선 게 민주당의 패인이어서다.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보다 토론을 더 잘 했고 정책능력도 더 어필했다. 높은 정권교체지수에 발목이 잡혔던 거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도 몽상의 발로로 여겨진다. 코로나19 발생 후 문 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했다. 2020년에만 이 말을 두 번씩이나 했다. 그런데 2022년 5월에도 여전히 터널의 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탈원전 도그마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 비중만 높여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까. 탄소중립엔 에너지 환경기술이 필수다.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ESS(에너지 저장장치),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까진 원자력과 동행해야 한다. 더욱이 SMR(소형모듈원자로)은 원전 강국 한국의 미래 먹거리 아닌가.
# 口頭禪 리더십
문 전 대통령은 실천보다 말이 앞섰다. '연방제 수준의 강력한 분권국가 구현' '광화문 집무실 시대'란 대선 후보 때의 공약은 허언이 되고 말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취임사의 백미는 '내로남불'에 쓸려나갔다. "저에 대한 지지와 상관없이 훌륭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던 탕평 의지는 코드 인사에 매몰됐다.
취임 초 인천공항공사에서 호기롭게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되레 비정규직은 더 늘어났다. 지난해 8월 기준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는 806만명으로 사상 처음 800만명을 돌파했고 전체 임금근로자에서 비정규직 비중은 38.4%로 높아졌다. 이벤트 정치의 허망한 귀결이다.
문 전 대통령은 '선하지만 무능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그 '무능' 속엔 '허황하다'는 함의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 재임 기간은 미몽(迷夢)과 방만의 5년이었다. 부동산 폭등하고 국가부채는 급증했다. 대중·대북 굴종의 시간이기도 했다. 문득 떠오르는 경구가 있다. '국민 입장에선 사악해도 유능한 지도자가 차라리 낫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의 지론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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