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피플] 한국 현대소설로 박사 학위 받은 최초의 인도인 칸 앞잘 경북대 교수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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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5 09:43  |  수정 2022-07-06 08:31  |  발행일 2022-07-06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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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앞잘 경북대 연구교수가 인터뷰 도중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조진범 논설위원

최근 대한민국에서 인도가 거론되고 있다. 신냉전시대를 맞아 인도의 움직임이 주목을 받는 모습이다. 인도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의 참여국인 데다, 인도·태평양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의 회원국이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로 구성된 쿼드 역시 반중 연대이다. 한국의 가입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 주도의 경제 및 안보 협의체에 들어가 있는 인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인도는 미국의 경고에 아랑곳없이 싼 가격으로 러시아산 석유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그런 인도를 제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남아시아 패권국 인도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제사회에서 인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국내에 인도 전문가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도대체 인도는 어떤 나라인가. 경북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인도 출신의 칸 앞잘 교수를 만나 인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1일 경북대 인문한국진흥관에 있는 칸 앞잘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자연스러운 한국어가 인상적이었다. 칸 앞잘 교수의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은 유심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다. 고(故) 최인훈 선생이 쓴 희곡의 제목이다. '최인훈 전공자'답다.

▶한국 사람에게 인도는 '신들의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정말 그런가.
"신들의 나라보다 더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다. 신들의 나라이면서 사람의 나라이다. '인크레더블 인디아'라고 불리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좋다는 뜻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이면서 이해하면 아주 쉬운 나라이다. 또 기회를 찾기 어려우면서도 쉬운 나라이기도 하다. 양면성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인크레더블 인디아'는 인도 정부가 관광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내건 슬로건이다. 요가, 정신 수양 등 인도 전통 문화와 역사를 전면에 내세워 관광객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종교의 발상지라는 점도 작용했다. 인도는 힌두교, 불교 등이 시작된 곳으로 성지 순례를 목적으로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기회를 찾기 어려우면서도 쉽다는 의미는 뭔가.
"인도는 사실 무질서의 나라다. 질서가 없기 때문에 빨리할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프라가 잘 된 지역도 있고, 상당히 낙후된 지역도 있다. 인프라가 있는 곳에 투자할 것인지,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투자할 것인지를 잘 선택하면 인도에 진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라가 크고 인구도 많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인구 대국이다. 인건비도 싸다. 기회가 많은 땅이지만, 동시에 인도에 대해 모르면 어렵다."


▶인도를 힌두교의 나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인도를 힌두교의 나라라고 해석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인도는 다종교, 다민족 그리고 완전한 민주주의 나라다. 힌두 세력이 가장 세지만 다양한 종교,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고 종교 집단이 아닌 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도의 불교 인구는 0.7%에 불과하지만, 국가 공휴일로 지정돼 있고, 수상이 직접 불교 행사에 참여한다. 무슬림이 14% 정도인데 동등하게 대우받고, 정치에도 참여한다. 인도에 있는 무슬림은 다른 나라의 무슬림과 다르다. 인도적 무슬림이다. 인도의 발리우드 배우 중에 무슬림이 적지 않고, 종교 차별 없이 모두 즐겁게 어울린다. 인도는 종교의 나라라기 보다 민주주의의 나라라는 게 더 정확하다."


▶종교 차별이 없다고 했는데, 무슬림의 나라인 파키스탄과 갈등이 있지 않나.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해방됐을 당시 파키스탄과 분리됐다. 한국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다. 종교적, 정치적 이념으로 갈라지면서 정치의 중요한 수단이 됐다. 한국의 '빨갱이'처럼 인도에서 '이 사람이 파키스탄인이다'라는 말이 사용된다.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에선 힌두교 사람에게 '인도로 가라'고 한다. 인도에서 소수자로서 무슬림이 차별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없다. 다만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종교적 담론으로 이용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분리되면서 원래 원수였던 영국은 선한 존재로 빠져나가 버렸다."


▶인도에 신분 질서제인 카스트제도가 아직 존재하나.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법적으로 있다. 카스트제도를 유지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가촉천민(달리트)으로 불리는 최하 계급을 지원·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최하 계급에게 계급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달리트는 모든 분야에서 할당을 받는다. 대학 입학이나 직장, 정부기관에서 50% 정도를 먼저 달리트에게 할당한다. 인도 중앙정부가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시한 제도이다. 인도에서 카스트를 가지고 태어나고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계급 차별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인도 헌법에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인도인이라고 돼 있다. 지금 인도 대통령도 달리트 출신이다."


▶인도가 '포스트 차이나'로서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나.
"가능성이 충분하다. 일단 인도에는 인재가 많다. 미국 실리콘밸리나 나사(NASA)에 인도 출신들이 많다. G2(미국, 중국)처럼 세계적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또 모디 정부가 적극적으로 인도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열린 마음으로 모디를 지지하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모디 총리는 지난 선거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지지를 받았고, 오는 2024년에 다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 역사상 처음이다. 모디 총리가 '메이크 인 인디아'(해외 기업들의 제조공장을 인도에 유치해 제조업을 활성화시키자는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전세계 기업들을 초대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 때문에 인도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동행한다고 했는데, 미국이 반대하는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미국은 사실 인도의 동맹국이 아니다. 냉전시기 전세계가 미국과 소련의 동맹으로 나뉘어졌는데, 인도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당시 소련이 우호적으로 다가왔고, 미국은 인도를 외면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하고 동맹의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니다. 인도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이다. 인도의 외교부 장관이 최근 유럽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은 자신의 문제를 곧 세계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세계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유럽도 러시아에서 몰래 기름을 사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 러시아산 기름을 수입하지 말라는 자격이 있느냐를 지적한 것이다."


▶한국이 인도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나.
"한국이 처음 중국에 진출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해법이 보인다. 초창기 한국이 중국에 갔을 때 중국어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조선족의 역할도 컸다. 인도에는 그런 게 없다. 인도에서 성공하려면 우선 인도학이라든지, 인도의 연구기관이 마련돼야 한다. 지금 한국에는 인도 전문가가 거의 없다. 대구에는 한 명도 없다. 경북대에도 중어중문학과는 있지만, 인도학과가 없다. 대구에 적어도 인도연구센터가 있어야 한다. 인도연구센터를 통해 인도 전문가를 양성하면 인도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 미국을 살펴보면 대학마다 인도학과가 있다. 인도와 적대적인 중국의 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해 성공한 것도 인도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칸 앞잘 교수는 인도와 대구의 인연을 잘 활용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수성구 범어공원에 한국전쟁 당시 국제연합 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참전했던 나야 대령의 기념비가 대표적이다. 나야 대령은 낙동강 전투 때 지뢰 폭발로 사망했다. 전쟁 중이라 유해 송환이 어려워 범어동 야산에 묻혔다. 나야 대령의 기념비는 지난 2003년 보훈처로부터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받았다.


▶인도에 한국의 문화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나.
"인도의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를 엄청 좋아한다. 한류가 열광인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문학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인도 시장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게 놀랍다. 인도는 인구 대국이고, 출판 대국이다. 인도가 한국 문화계의 엄청 큰 시장이라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한국 교육계나 정부가 좀 신경을 썼으면 한다."

칸 앞잘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BK 교육연구단 연구교수는 한국 문학과 인도 문학을 비교한 최초의 인도인이자, 한국 현대소설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도인이다. 석사와 박사 학위를 모두 경북대에서 받았다. 석사 학위 논문은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신채호 선생의 문학과 인도의 문학을 비교한 것이다. 박사 학위 논문은 '최인훈 소설의 유토피아 의식 연구'이다. 고(故) 최인훈 선생은 소설가이자 극작가. 장편소설 '광장'이 잘 알려져 있다. 칸 앞잘 교수는 "최인훈 선생은 해방 이후 최고의 지식인이고, '광장'은 분단 이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장'에는 인도의 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가 나온다. 주인공 이명준이 중립국으로 가는 배 이름이 '타고르호'이다. 인도와 직접적인 연결성이 있어 박사 논문 주제로 삼았다"고 밝혔다.


칸 앞잘 교수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활동했던 곳으로 유명한 왕사성(현 파트나) 출신이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로 이사와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쳤다. 뉴델리 네루대의 언어문학문화학부를 졸업했다. 네루대는 냉전시기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기관으로 설립됐다. 국제관계를 다루다 보니 외국어가 중요해졌고, 대학원 대학으로 발전한 이후 전세계 어문학을 가르치는 언어문학문화학부가 생겼다. 칸 앞잘 교수는 "동아시아에 관심이 많아 한국·일본 및 동북아학과를 선택했다"고 했다. 국비 유학생으로 지난 2008년 한국에 왔다. 전북 익산의 원광대에서 1년간 고급 한국어를 수강했고, 이듬해 경북대로 옮겨 한국 현대문학에 천착했다. 칸 앞잘 교수는 언어 천재이다. 모국어인 힌디어와 우르두어 외에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에도 능통하다. 칸 앞잘 교수는 "문학을 전공하면 자연스럽게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언어와 문학에는 그 나라의 정서가 담겨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칸 앞잘 교수는 결혼 2년차의 신혼이다. 부인은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후배로 대만 출신이다. 부인도 한국 현대문학 전공자로 최근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칸 앞잘 교수는 "고향에서 한국어학과 일자리가 생기면 교수로 갈 생각이다"라고 했다.
조진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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