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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소장이 직접 작성한 대구 신청사 콘셉트 스케치. |
지방자치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전국의 시청사는 민선 2기 이후부터 신축되거나 이전이 되면서 지역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시청사의 입지와 건축은 매우 중요하여 대부분 공청회와 공모를 거쳐 진행되었으나 지어진 청사들은 주변의 환경을 압도하는 모양새와 인간 친화적이지 않은 자세로 어떤 감응도 감동도 주지 못하였다. 더구나 몇몇 청사는 호화로운 시설과 규모로 '혈세 낭비'라는 언론의 질책과 시민의 항의가 있었다.
대구 역사의 산실인 경상감영·종로·진골목…
거리환경개선사업 정비 차원에 그쳐 아쉬워
공공청사·근생시설 등 합쳐진 '남대문 세무서'
다양한 역할·기능 충족시킨 복합건물의 예시
공공자산 상징성·시민접근 편의성 등 고려해
시민 자긍심 키울 수 있는 신청사로 지어야
◆쿤스트하우스
그중 가장 많은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서울시청사는 모양새부터 시민과 건축가로부터 논쟁을 유발했다. 유명 건축가의 작품치곤 그 결과물은 충분히 논란거리를 일으킬 만하였다. 처음 방문했을 때 시청광장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쿤스트하우스를 떠올리게 하였다. 쿤스트하우스는 페이퍼 아키텍트로 유명한 피터쿡(Peter Cook)과 콜린 포니어(Fournier)가 국제 공모전에 당선(2000년)되어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지어진 건축물(2004년)로 '친근한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처음 지어질 당시 시민의 반응은 냉담했지만, 외부에서 느껴지는 낯선 모습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투명한 유리 벽을 통하여 당시의 구시가지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어 그라츠시의 역사와 유산을 함께 담아내는 훌륭한 건축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그라츠시가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의 건축물이 되었다. 친근한 외계인은 독특한 스타일과 화려함으로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그라츠시의 환영받는 새로운 식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며칠 전 다시 서울시청사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고, 잔디 광장에 누워 음악 공연을 들으며 찬찬히 살펴보니 구시청사를 안으면서 배경이 되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공의 디테일은 불편하였다. 상부층에 전시장과 카페를 두어 시민의 휴식과 여유를 제공하고 잔디 광장의 시야까지 확보하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 역시 커튼 월 내부의 복잡한 프레임으로 불편하고 답답했다. 이는 형태에 치우쳐 시민의 행태를 좀 더 세밀하게 고민하고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한 설계와 시공의 부족이라 판단된다. 처음 디자인에서 마감의 시공까지 참여하지 못한 건축가의 슬픔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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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사 상부층 카페 내부. |
◆깍두기 도시 대구
달구벌 대구는 '깍두기 도시'이다. 처음 대구에 내려왔을 때의 느낌이었다. 깍두기처럼 썰어 놓은 건물들이 표정 없이 도시를 채우고 있었고 소중한 자원과 자산은 감춰지고 녹슬고 있었다.
대구시의 정체성은 역사가 쌓여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는 수요와 공급에 맞추어 생긴 신도시와는 태생과 신분이 다르다. 특히 경상감영은 대구시의 배꼽이요, 대구시청의 사당과 같은 장소이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높고 양지바른 곳에는 조상을 위한 사당을 먼저 지었다. 집에는 기운을 펼칠 수 있는 사랑 마당이 있었고, 모을 수 있는 안마당이 있었다. 이는 집의 기운을 균형 잡게 하고 안정되게 하는 주요한 음양의 요소였다. 풍수지리는 대립되는 각 요소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묶어서 통합하는 역할을 했다. 대구가 품고 있는 천혜의 자원인 강과 천과 산과 구릉이 있지만, 도시의 건축물은 그런 자원들과 순응하지 못하고 반항하고 저항하는 형세로 꽉꽉 채워지고 있다.
대구의 상징성은 경상감영을 좌표점으로 동성로, 종로, 진골목, 북성로 등 길의 매듭자리에 있다. 대구는 동성로 개선사업을 시작으로 종로, 진골목, 중앙로, 약령시 등 거리환경개선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비 차원의 수준을 넘지 못하였고 시민에게 별 감응과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미완성인 대구의 중심을 두고 서쪽으로 시청을 옮겨 새로이 판을 짠다는 대구시의 발표는 필자에겐 선뜻 이해하기 어려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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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사 잔디마당. |
◆만약 서쪽으로 옮긴다면
대구 신청사에 대한 막연한 개발 기대는 위험하다. 철저한 검토와 준비, 계획 없이는 시공 과정 속의 무수한 변수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고 지은 후의 유지와 관리의 차원에서도 불편과 불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돌이킬 수 없는 실망과 손실을 안겨 줄 수도 있음을 국내의 여러 사례에서도 충분히 보아 왔다.
거창하고 화려하게 우뚝 세우겠다는 욕망보다 어떻게 시민의 뜻을 모으고 펼쳐내는 소통과 화합의 공간으로 시청의 역할을 할 것인가? 어떻게 투명·정직하게 효율적인 시정 운영의 기능을 할 것인가? 그리고 한번 지으면 백년을 가고 천년을 가는 대구시의 공공자산이요, 공공문화의 장소로서의 시청이 지역의 랜드마크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함에 교두보가 되게 할 것인가? 아울러 이번 기회를 통하여 대구시민이 공공재를 대하는 자세와 인식을 새롭게 그리고 선진 문화적인 안목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지금껏 대구 공공건축의 비실거림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대구시민의 선진화, 민주화된 의식이야말로 대구를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성장하게 하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2016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이 공포되면서 열악한 재정 사항으로 인해 공공 건축물을 신축하기 어려웠던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들은 민간 사업자의 투자를 통하여 투자비 부담을 줄이고 적기에 공공청사와 편익 시설 등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사실 토지의 합리적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공공시설과 민간 사업자의 투자를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한 시설 간에 복합개발 방식이 법령상 허용되고 있었으나, 지방자치단체들의 미온적 태도(공무원은 새로운 사업을 두려워한다)와 정보의 부재 등으로 공공청사 복합개발사례가 극히 미비한 사항이었다. 더구나 대구는 사업부지만 확보된 상태에서 귀 기울여 볼 만한 대안이 아닐까? 대구시의 재정이 코로나로 인한 재정 지출로 빈약해짐에 신청사를 복합개발형으로 진행하는 방법이 가장 지혜롭지 않을까?
◆권위의 대명사 공공청사
과거 일제 강점기의 공공청사는 통치와 권위의 대명사였다. 그러다가 광복 후 행정 중심의 청사가 생겨났고 1990년대 지방자치 이후에 행정과 대민, 의회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작금의 시대에서는 행정, 대민, 의회, 문화, 주거, 복지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갖춘 복합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발상이 아닐까? 공공청사와 수익형 복합시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은 서로 잘 엮으면 충분히 그 역할과 기능을 충족하리라 예상된다.
참고로 2008년 공공청사와 일반업무시설, 근생시설로 신축한 남대문 세무서, 2018년에 상부층에 공공주택과 저층부의 근생시설을 둔 구로구 오류1동 주민센터가 좋은 예이고 특별히 네덜란드의 헤이그 시청사는 세계적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가 설계한 시청사로 대구시 공무원과 의원분들이 견학을 다녀오는 것도 추천해 드린다. 도서관, 극장, 백화점, 시청사, 의회실 등이 서로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내부공간의 길을 통하여 시민에게 편의와 휴식을 제공하고 헤이그 시민의 자긍심을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관광지로도 유명해진 복합청사이다.
시청사를 공공재로 해석하기보다 부동산개발로 여겨 지역의 개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치경쟁이 치열했음을 짐작한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 틀릴 수 있겠지만 지역의 구민이 아닌 대구시의 시민으로서 책임성 있는 판단을 해야 한다. 가까운 지역 내에 유치한다고 해서 그 지역의 장밋빛 개발을 기대하는 것은 시민의식의 부끄러움이다. 시청사 이전이 특정 지역의 발전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시청사가 가진 본연의 중심적 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짓고 나서의 운영과 경영에 시민의 뜻이 모이고 반영되어 대구시민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키워나가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청이 지닌 상징성, 도시 활동의 중심성, 시민접근의 편의성, 공간의 활용성, 환경의 쾌적성, 사업 시행의 용이성 등을 꼼꼼히 짚어 봐야 할 것이다.
서울에서 시작되는 도시의 패턴과 건축의 유형이 전국에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엔 우리는 너무나 빈약하다. 서울에서 타워를 세우면 우리도 세워야 하고 서울에서 전당을 지으면 우리도 지어야 된다는 의식은 누구에게서 나오는 걸까 늘 궁금하였다.
사실 서울시청사의 건물은 실망스러웠다. 건축가의 의도는 충분히 읽혔으나 그 결과물은 참담했다. 서울시청사에 대한 기대점수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면 대구가 이번 기회에 시청사로서 제대로 된 공공건축을 선보이면 어떨까?
<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a30co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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