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내 '학폭의 불씨' 커지기 전에 갈등 해결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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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1-07 07:25  |  수정 2022-11-07 07:28  |  발행일 2022-11-07 제12면
대구시교육청 '관계회복지원단' 활약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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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대구시교육청 내 초등과 중등 교사 40여 명으로 구성된 관계회복지원단의 회복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2013년 1만7천749건이던 학교 폭력 발생 건수가 지난해 4만4천44건으로, 150%가량 증가했다. 지역별로보면 이 기간 세종지역의 학교폭력증가 비율은 871%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경북지역도 전국 평균보다 높은 160%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면 대구시교육청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증가율(40%)을 기록했다.(조경태 의원 국정감사 자료) 이뿐만 아니라 올해 진행된 학교폭력실태조사 대구지역 학교폭력실태조사 피해응답률은 0.8%로, 전국 평균(1.7%)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낮았다.

이처럼 다른 지역보다 학교폭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대구시교육청 내 관계회복지원단(이하 지원단) 소속 교사들이 4년째 학교현장을 누비며 학교폭력 예방과 학생 간 관계회복을 위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꺼낸 정성과 흘린 땀방울 그리고 함께 지내온 시간이 그것이다.

초등·중등교원 40여명으로 구성
학교 갈등 중재·상황별 해법 모색
학생이 주체적 문제해결 하도록
또래 중재자 교육도 함께 실시해

피해학생 마음 대변해 대화 유도
집단 따돌림 사례 근본원인 해결
더 나은 교우관계로 발전 돕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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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대구시교육청 내 초등과 중등 교사 40여 명으로 구성된 관계회복지원단의 회복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관계회복지원단은 어떻게 구성됐나

초등과 중등 교원 40여 명으로 구성된 교사학습공동체인 지원단은 학교 내 갈등을 중재하고, 생활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과 학교폭력의 당사자로 고통받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첫해 20여 명에서 2배 가까이 규모도 커졌다.

지원단은 △교실 내 무너진 신뢰와 관계를 일으키는 '회복교실' △갈등 당사자들끼리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연결하는 '대화 모임' △교실 내 발생하는 작은 갈등을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다룰 수 있도록 훈련하는 '또래 중재자 교육' △학생생활교육에 도움을 원하는 학교로 직접 찾아가 함께 해법을 찾아보는 '찾아가는 교사 연수'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출발한 지원단은 코로나19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다 2021년부터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갔고, 그 덕분에 지난해부터 지원 신청이 급증했다. 그런 덕분에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지원 활동이 활발해졌다.

관계회복 프로그램 진행 후 변화에 대한설문에서 교사들은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서로 대화할 때 배려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학생들의 감정 나눔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 회복을 연습하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 "학생들이 친구의 행동 변화에 도움을 줄 방법을 배운 것 같다" "학교 내에서 해결되지 않는 갈등에 대해 도움 받을 곳이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관계회복지원단의 왕성한 활동으로 생활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방향성을 탐색할 기회가 계속 주어지고 나아가 학교폭력 예방에 크게 이바지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관계회복지원단이 회복시킨 사례들

이동수업 때 혼자 다니는 중학교 1학년 A양. 담임교사가 상담을 했지만, A양은 별일 아니라고 해 넘어갔다. 하지만 학부모 전화로 집단 따돌림 사건임을 알게 됐다. 한 반 여학생이 얼마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A양과 친했던 한 학생이 따돌림을 주도, 모든 여학생이 A양과 대화조차 하지 않게 된 상황이었던 것.

이에 A양은 괴로움을 호소했고, 여학생들 간의 미묘한 심리전으로 문제의 심각성은 인지했지만, 학교에서 다루기 어려운 사안이라 판단해 지원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원단에서는 회복교실 프로그램과 더불어 당사자들 간의 대화 모임을 먼저 진행했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해당 학생들을 각각 따로 만나 사전에 서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오해를 풀고 싶고 편안한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확인했고, 바로 다음 날 해당 학생들이 모두 모여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용기내 이야기하겠다던 A양이 갑자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 아이가 너무 두렵고,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까 봐 걱정이 된 것. 시간이 지나도 A양의 말문은 열리지 않았고, 이에 진행자가 A양의 입장이 되어 상대 아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주자, 점점 용기가 나 A양도 자기 입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토해냈다.

A양은 "먼저 인사해 줘서 고맙고 예전처럼 친하게 되어서 행복하다. 친구들도 나만큼 힘들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갈등이 해결되고 오해도 풀어서 이제 좋은 추억들이 더 많을 것 같아 기대되고 희망적"이라고 전했다.

A양의 담임 교사는 "아이들의 갈등이 있었을 때 제가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상황이 더 어려워져 난감했을 때 지원단을 알게 되어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이들이 편안해진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고 지원단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B군에 대한 한두 명의 괴롭힘이 집단 따돌림으로 번질 것 같다는 우려가 지원단에 접수됐다. 접수 이후 지원단이 B군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모둠 활동에서 발표자로 뽑혔지만, 모두가 반대해 결국 발표자가 되지 못했던 것. 하지만 반대했던 아이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B군이 수업 시간에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자신의 화를 제대로 조절 못해 교실 바닥에 드러누워 우는 등 이상한 아이라는 것. 그런 꼴이 보기 싫어 일부러 괴롭히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고 수업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모둠 발표자를 바꾼 것에 대해 B군은 처음 약속을 지키는 것과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상대 아이들은 애초 약속을 어기고 발표자를 바꾼 것은 미안하지만 B군이 발표자가 되면 장난식으로 발표를 망칠 것 같은 걱정이 되는 만큼 먼저 믿음 주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다 갖가지 사건들에 대한 오해가 풀리면서 서로에게 신뢰와 소통, 존중이 중요한 욕구였음을 찾게 됐고, 스스로 "다섯 명이 하루에 한 번 5분 정도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들이 '진지하기로 했잖아'라고 얘기하면 진지하게 행동한다" 등의 약속을 제안했다. 이후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진지하기로 했잖아'라고 말하며 서로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며 바른 태도로 다잡아 가는 모습을 보였고 분위기도 달라졌다.

B군의 담임교사는 "처음에 따돌림 걱정으로 신청했는데 아이들이 정말 잘 지내고 관계가 편안해져 저도 편하고 와 주신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원단 관계자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대화 구조에 따라 말을 전달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순수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찾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행동 약속을 제안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게 됐다"고 평가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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