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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의회와 예천군의회에 행정통합 추진을 요구하는 펼침막이 최근 안동지역 한 도로변에 내걸려 있다. 〈독자 제공〉 |
경북 예천에서 이웃 지자체인 안동과의 행정구역 통합을 논의하게 된 데는 행정 이원화에 따른 주민 불편과 혼선이 주된 이유였다. 현재 예천군민은 법무는 상주, 세무는 영주, 기타 행정은 안동으로 가서 처리해야 한다. 도청신도시 주민 역시 같은 불편을 호소한다. 최근 도청신도시(예천·안동) 일부 주민은 예천·안동 행정구역통합 신도시추진위원회(이하 신도시추진위)를 구성하고 행정통합을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오는 16일 도청 동락관 세미나실에서 '예천·안동 통합 가능한가'란 주제로 상생발전 전략 포럼도 연다. 여기에다 안동시는 올 연말 '안동·예천 행정통합'을 묻는 주민투표를 계획하고 있다. 주민투표에 앞서 분위기 조성에 나서는 등 신뢰를 통한 상생 터전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현재 예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왜 그럴까.
■ 두 지역 상반된 입장
안동시 올 연말 주민투표 계획
포럼 통해 분위기 조성 전략도
예천은 독도 침탈에 비견 격앙
"정치적 기반 만들기 속셈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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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안동시청 앞에서 예천 7개 유림단체 회원들이 안동시의 일방적인 행정구역통합 추진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예천문화원 제공〉 |
◆안동·예천 '동상이몽'
안동시의 통합추진 움직임과 신도시추진위의 통합분위기 조성과 관련해 예천군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행정통합이 아니라 행정서비스 일원화가 급선무라는 것이다.
이는 최근 예천군이 학술연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지역 내부자산 최대화를 위한 방안'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두 지역 주민이 느끼는 행정서비스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실시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예천군민 440명, 안동시민 412명이 참여했다. 조사 항목에는 △지역정치인의 리더십 △거주 만족도 △지역의 사회문화·자연·인적 자산 △경쟁력 등이 포함됐다. 설문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응답자 중 정치인과 공무원은 배제했다.
설문조사 결과 모든 항목에서 예천군민이 안동시민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줬다. 전체 문항(5점 만점)에서 예천은 2.71점, 안동은 2.18점의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도청신도시를 주변에 추천할 의향이 있는지, 전반적인 만족도는 어떤지 등으로 구성된 지역경쟁력 항목에서 예천은 2.57점을 얻어 안동(1.89점)보다 0.68점 높았다. 경제활동인구 증가와 유입인구 증가 등 인적 자산에 대한 응답 역시 안동(1.55점)보다 0.83점이 높은 2.38점을 받았다.
이 같은 '자부심'과는 별개로 안동의 통합론을 대하는 예천의 최근까지의 분위기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비교할 정도로 다소 격앙돼 있다. 자국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때만 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처럼 안동지역 정치인의 행정구역 통합 주장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것. 최영수 전 예천군번영회장은 "안동에서 정치적 기반이 약한 선출직들이 흩어진 시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통합론을 꺼낸 것"이라고 지적한 뒤 "안동 내부의 위기상황에 대한 시민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통합론을 주장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북도청을 유치하기 위해 안동과 예천은 의좋은 형제였는데, 이제는 단절된 관계의 형제가 되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타 지역 통합 사례
마창진 합쳐 덩치 키운 창원시
예산 2조3000억원이나 날린 꼴
구미 흡수된 선산 소외론 여전
인구는 2만1385명→1만4623명
◆마창진과 구미·선산 선례
경남 마산·창원·진해, 이른바 '마창진'은 2010년 창원시로 통합됐다. 수도권에 밀리지 않기 위해 덩치를 키워 한번 맞붙어 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통합 전보다 못하다는 볼멘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이는 통합 전 3개 도시와 비슷한 위상을 가진 도시의 올해 예산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된다. 통합 전 마산시(인구 40만명)와 인구가 비슷한 진주시의 예산은 1조9천억여 원, 창원시(인구 50만명)와 비슷한 포항시의 예산은 2조6천억여 원, 진해시(인구 17만명)와 비슷한 안동시의 예산은 1조4천억원이다. 이들 3개 도시의 예산을 합하면 6조원 정도이지만 올해 통합 창원시 예산은 3조7천억원에 그쳤다. 산술적으로는 통합으로 인해 2조3천억원가량이 날아가 버린 셈이다.
1995년 구미시와 행정통합한 선산군 역시 지금까지도 '선산 소외론'이 숙지지 않는다. 당시 주민 간 갈등을 조정하려는 방법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통합을 추진한 결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통합에 앞서 선산군의회에서 통합시 명칭을 '선산시'로 할 것을 의결하자 구미시의원 전원(21명)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는 등 초강경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통합 후 선산군은 선산읍이 되면서 행정조직은 '선산출장소'로 운영됐다. 인구도 줄기 시작했다. 선산군의 행정기능이 구미시로 흡수되자 선산읍에 거주하던 공무원, 기관단체 임직원, 주민 등은 교육·생활·문화·교통 인프라가 풍부한 구미시로 주소를 옮기면서 인구 감소가 본격화했다. 구미시와 통합 당시 선산군 인구는 2만1천385명이었으나 2020년 말 1만5천1명, 지난해 말 1만4천623명으로 감소했다. 행정구역 통합 27년 만에 6천762명이 감소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천군민의 걱정은 클 수밖에 없다. 행정 공백도 우려된다. 안동과 예천의 읍·면·동사무소를 합하면 총 36곳(안동시 24곳·예천군 12곳)이다. 면적도 제주도보다 조금 더 넓어진다. 이 때문에 단체장이 행정력을 골고루 펼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예천안동행정통합반대추진위원회 정상진 위원장은 "안동은 도청신도시 형성에 따른 이주와 함께 기차역·버스터미널 등을 외곽으로 옮기면서 도심이 급격하게 무너지는 등 원도심 공동화 현상을 빚고 있다"며 "이러한 시기에 안동과 예천이 통합하면 선출직인 단체장의 제1 관심사는 예천도, 신도시도 아닌 안동의 구도심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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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너지 위한 연계 전략
예천군은 장기적으로 통합의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도청신도시를 단일생활권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조합'(경북도·예천군·안동시가 참여하는 공동관리조직)을 설립해 인구 10만 신도시로의 조기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지방자치단체조합의 주요 업무는 주민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중심으로 공공시설·기반시설의 유지와 관리, 대중교통 계획 협의와 순환버스 운영, 공동구 시설물 유지·관리 운영, 지구단위계획 협의·조정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예천군은 통합 불가 이유로 여러 학술연구에서 확인된 기초단체의 재정지출과 인구 규모의 관계에 대한 실증 분석을 들고 있다. 인구가 시 단위는 30만~40만명, 군 단위는 7만5천명 전후에서 재정지출 효율이 극대화한다는 것. 현재 예천 인구는 5만5천755명(지난해 말 기준)이다. 도청신도시 2단계 사업에 반영된 공공주택(5천676가구) 대부분이 예천에 위치해 있는 등 2025년 사업이 완료되면 1만4천여 명의 인구 유입이 예상된다. 가장 이상적인 인구 규모인 7만5천명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어 예산 효율의 극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 예천군의 주장이다.
이와 함께 안동과 예천이 통합되면 면적이 제주도보다 넓어져 추가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예천안동행정통합반대추진위원회 정상진 위원장은 "시·군 통합 문제를 해당 지역 주민의 공감대 없이 다른 이해관계로 접근하는 방식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경제적·산업적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연계전략을 마련하지 않고 논의를 진행하는 설익은 통합론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예천군의 지방교부세가 1년에 3천억원 정도 되는데, 통합이 되면 단체장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표(인구)가 많은 지역에 집중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기초의원 수도 줄어 예천지역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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