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 인사를 찾아서] '달성 출신' 나춘호 예림당출판·티웨이항공 회장 "고정관념 벗어나 거꾸로 생각하고 다른 각도서 보는 눈 길러야"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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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1  |  수정 2023-01-11 07:47  |  발행일 2023-01-11 제13면

[출향 인사를 찾아서] 달성 출신 나춘호 예림당출판·티웨이항공 회장 고정관념 벗어나 거꾸로 생각하고 다른 각도서 보는 눈 길러야
나춘호 예림당 출판사·티웨이항공 회장이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집무실에서 고향인 대구시 달성군에 얽힌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학습만화 'Why?' 시리즈는 국내 어린이책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냈다. 수학·과학·한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아이의 눈높이로 풀어냈는데, 2001년 첫 출간 후 지금까지 누적 8천600만부를 판매했다. 현재도 12개 언어로 45개국서 판매되고 있다. 이 땅의 어린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구입하였을 Why 시리즈를 기획하고, 글로벌 상품으로 키운 예림당 출판사·티웨이항공 나춘호 회장의 인생역정을 돌아본다.

외판원 4년만에 회사 설립
출판시장 패러다임 혁신

번역류 중심이던 아동도서 분야
창작동화·그림책으로 정면승부
학습만화 'Why시리즈' 승승장구


원고료 개념이 없던 1970년대
작가에 한 장당 1천원 파격지급
'방판→서점' 유통 중심 바꾸고
협회장 역임땐 POS·ISBN 도입
국내 출판시장 현대화 기틀 닦아

◆"공부하고 싶어요"

열두 살 소년은 땔감을 해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까부터 배 속에서는 꼬르륵 요동을 치고, 뱃가죽은 등짝에 붙어버린 듯하다. '언제쯤이면 이 가난에서 벗어나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까.' 소년은 새삼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이 간절했다.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훈장을 모셔 공부할 만큼 배움의 욕구가 남달랐다. 그때 어디선가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업을 마친 또래의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 새삼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진 소년은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당장 엄마에게 달려가 말했다. "어머니, 저는 유산을 받지 않을 테니 제발 공부를 하게 해주세요"라며 사정 아닌 사정을 했다. 어렵사리 학교에 가게 됐지만, 공부의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식구들을 제치고 혼자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일이 죄송스러웠다. 시험 때가 되어도 눈치가 보여 공부에 매진할 수 없었다. 나춘호 회장은 "틈날 때마다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치고, 이웃들의 사진 촬영 등을 해주며 용돈 벌이를 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출판 패러다임 바꾼 '예림당'

대학생이 되었지만, 집안 살림은 나아지지 않고 늘 쪼들렸다. 그는 입 하나 덜자는 생각으로 대학을 중단하고 공군에 입대했다.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 때가 되면 제공되는 식사까지 대구 K2의 군시절은 지금까지도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다. 전역 다음 날 그는 친구의 전화번호만 달랑 들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고향 집의 무료한 날들을 벗어나 기회의 땅인 서울에서 뭐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친구를 찾아갔지만 겨우 하룻밤 만에 짐을 챙겨 나와야 했다. 속칭 청량리 588의 여인숙이었다.

혈혈단신 서울 땅에서 살기 위해 맨몸으로 부딪혔다. 책 외판의 길로 들어섰는데, 타고난 손재주 덕분에 곤로·형광등 등을 고쳐주며 단골을 늘려나갔다. 뚝배기 진국과 같은 경상도 청년은 매일 잔고를 늘리더니 결국 4년 만에 예림(藝林·예술의 숲)당 출판사를 세우고 말았다.

그는 외국동화 번역류 중심이던 국내 어린이책 분야에 창작동화로 정면승부를 했다. 한글·탈것·동물·색칠하기 등 4종을 합본한 코스모스 그림책은 나오자마자 완판됐다. 또 책과 오디오를 접목한 오디오북, 과학과 만화를 접목한 Why 시리즈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출향 인사를 찾아서] 달성 출신 나춘호 예림당출판·티웨이항공 회장 고정관념 벗어나 거꾸로 생각하고 다른 각도서 보는 눈 길러야
나춘호(오른쪽) 예림당 출판사·티웨이항공 회장이 2020년 '자랑스러운 달성인상'을 수상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생 지켜온 출판철학

그의 혁신적 사업수완은 국내 출판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작가에게 원고료 개념이 없던 1970년대에 원고지 한 장에 1천원의 파격적 고료를 지급했다. 또 외판원을 통한 방문판매가 대세이던 유통을 서점 중심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6년간 대한출판업협회장을 맡아 POS(판매시점관리)·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도입해 출판시장 현대화의 기틀을 닦았다. 나 회장은 "우리나라는 독서를 많이 안 하는 나라이지만 출판실적은 세계 10위권에 올랐다. 이는 비교적 선제적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일찌감치 제도화를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에겐 애지중지하는 수첩이 있다. 수시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기록한 것이다. 거기엔 엉뚱한 생각, 황당한 아이디어들이 가득하다. 예를 들면 남미 여행을 열기구로 하는 것이다. 열기구를 타고 허공으로 직진했다가 12시간 후에 내리면 지구의 자전에 따라 반대편인 아르헨티나에 도착하지 않을까. 정수기를 대신해 보통 나무보다 삼투압 작용이 10배가 강한 수목을 울타리 안에 몇 그루만 심어 둔다면 고로쇠 수액을 마시듯 식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담배는 백해무익하다지만 피우면 피울수록 건강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개발하면 어떨까 등등. 나 회장은 "제 사업의 비결이 있다면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것이에요.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못하지만, 사람이 개를 물어 상처를 냈다면 뉴스가 되듯이 거꾸로 생각하고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눈을 키웠던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티웨이항공 인수
사업 다각화 날개 달아


"본사 대구 이전 큰 물줄기 확정
경영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
항공객 코로나 이전 수준 회복
연말쯤 대형기종 2대 더 들여와
호주·유럽까지 노선 확장 추진"

◆티웨이항공 본사 이전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2013년 티웨이항공을 인수,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알짜' 저비용항공사로 키우던 중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대구시와 업무협약을 체결, 대구로 본사를 이전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티웨이항공의 대구 이전은 지역 경제에도 청신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 인재 채용과 사회공헌 활동 △지역 항공 여객 및 항공 물류 수요를 반영한 노선 개설 △중·장거리 노선 개설 △항공기 수리·정비·개조 사업 확대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2030년 개항 예정인 대구경북신공항이 중남부권 관문공항으로 성장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 회장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대구로 주소지를 이전하는 큰 물줄기는 확정 지은 상태"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3월 주주총회에서 구체적 일정과 세부 내역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통합신공항이 열리면 항공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정비 파트를 대구에 설치하는 것도 잠정 확정했다.

나 회장은 "코로나로 항공 수요가 저조했는데 최근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했다. 현재 소형 26대, 대형 3대로 운항을 하고 있는데, 연말쯤에는 대형 2대를 더 들여와 호주와 유럽노선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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