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를 찾아서] '경북 출신' 박윤해 법무법인 백송 대표변호사 "힘 없고 백 없는 삶 벼랑 내몰려…사회구조 개혁 절실"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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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17 08:17  |  수정 2023-05-17 08:21  |  발행일 2023-05-17 제25면

박윤해2
박윤해 전 대구지검장이 법무법인 백송 설립 3년 만에 연매출 100억원의 중견 로펌으로 성장시킨 비결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윤해 법무법인 백송 대표변호사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동판액자가 시선을 끈다. 2019년 7월 대구지검장을 마지막으로 검찰에서 은퇴할 때 동료, 선후배들이 준 작별선물이다. 전국의 검찰청 직원 526명이 그를 떠나보내며 내부 인터넷망에 올린 소회·감상·덕담의 글을 동판에 새긴 것이다. 그는 지금도 틈날 때마다 동판의 글귀를 한 줄 한 줄 읽으며 옛 동료들과의 인연을 떠올린다. 박 변호사는 "애정이 묻어나는 글들을 읽다 보면 내가 지난 인생을 허투루 산 것 같지는 않다"며 웃었다.

◆한미 공조로 미제 사건 해결

1997년 서울 이태원 한 햄버거집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미국인들에게 '묻지 마' 살해를 당했다. 자칫 미제로 남을 뻔했던 사건은 2009년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장근석·송중기·정진영 주연)이 개봉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 3부장이던 박 변호사는 사건 발생 14년 만에 재수사에 돌입, 미국으로 도주한 용의자 아서 피터슨을 공소시효 만료 직전 기소했다. 미국과 공조해 피터슨을 국내로 송환했고, 마침내 국내 법정에 세워 징역 20년 형을 받게 했다.

22년간 검사로 재임 중 한국사회를 들썩인 굵직한 사건도 여럿 다뤘다. 박 변호사는 "총리실 민간인 사찰과 같이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할 일은 하자는 생각으로 수사에 임했던 듯하다"고 말했다.


경험·인맥 쌓은 유랑의 여정
사회적 파장 컸던 사건도 해결


검사 임관 후 전국 17곳에 근무
'지역민 편안하게' 신조로 임해
이태원 살인사건 재수사 맡아
美용의자 소환 20년형 받게 해



◆지역주민에 친근한 검찰

되돌아보면 그의 인생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유랑의 여정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직장 등을 이유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경북 문경 가은읍 갈전리에서 태어나 예천 경진초등, 문경 호서남초등, 상주 청동초등, 청리중, 김천고 등에서 수학했다. 이처럼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몸은 고달팠지만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인맥의 원천이 됐다.

검사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8년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로 임관 후 22년 재임 기간 충북 충주, 서울, 충북 제천, 강원 원주 등 전국 17개 근무지에서 근무했다. 박 변호사는 "지방근무를 하다 보면 지역민과 크든 작든 업무로 엮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엄벌하지만 그 지역 주민을 편안하게 해주자는 신조로 업무에 임했다"고 했다.

◆기부·봉사하는 삶 앞장

대구지검장으로 활동할 때였다. 지역 변호사들과 간담회를 하던 중 고향 이야기가 나왔다. 한 참석자가 그동안 뵙고 싶었던 경진초등 담임 정안수 선생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계기로 강인실·임순란·박용기·안한근·정재옥·이종선·박춘규·이병석·주성규 등 여러 은사를 찾았고, 검찰청으로 초대하거나 방문해 대접했다.

그는 모교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환원하고 봉사하는 삶을 줄곧 실천하고 있다. 모교인 김천고에 장학금 1억원을 약정한 후 검사 재직 시부터 현재까지 매년 1천만원씩 기부를 하고 있다. 또 석박사과정을 다닌 숭실대에 발전기금 2천만원을 쾌척한 것을 비롯해 대구경북지역 코로나 성금 1천만원, 상주시 노인회관 건립기금 500만원 등 고향사랑을 몸으로 적극 실천하고 있다.


기부·봉사로 사회환원 실천
지방 정주여건 개선 조언까지

모교·사회 혜택 되돌려 주고자
장학금 기탁…고향사랑 성금도
인구 감소세 경북 갈수록 위축
서울 버금가도록 투자 필요해



◆3년 만에 중견 로펌 성장

애정으로 걸어온 검사의 길은 뜻하지 않은 일을 계기로 접어야 했다. 2019년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됐다. 그로부터 며칠 후 박 변호사는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한 달 후 안희준 전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와 서울 서초동 초석빌딩 6층에 법무법인 '백송'을 설립했다. 김환수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선일 전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김용관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강지식 전 안산지청장 등도 속속 합류했다. 법무법인 백송은 구성원 변호사들이 의뢰인과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소통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승승장구했다. 설립 3년 만인 지난해 법원·검찰 출신 변호사 20명에 연 매출 100억원이 넘는 중견 로펌으로 성장했다.

◆지방 정주여건 개선 시급

최근 한국사회는 온갖 이슈와 이데올로기가 섞여서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보수와 진보, 지역감정, 이념 대립 등 극단적인 편 가르기가 판을 치고, 힘없고 '백' 없는 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방의 삶도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수도권으로 몰려가고, 지방에는 사람이 적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 특히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16개 지자체가 인구감소지역(전국 89곳)에 포함되었다.

박 변호사는 "지방에도 서울에 버금가는 교육, 문화, 교통 등 정주 여건을 만드는 투자 및 사회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가장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인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주장하는 귀농, 귀촌, 특색 있는 지역경제 개발 등이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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