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페르난두 페소아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 송재학 시인
  • |
  • 입력 2023-05-29  |  수정 2023-05-29 07:02  |  발행일 2023-05-29 제21면

2023052801000880000035971
송재학 시인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산다.

내가 생각하거나 느낄 때면, 나는 모른다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이 누군지.

나는 그저 느끼거나 생각하는

하나의 장소.

나에게는 하나 이상의 영혼이 있다.

나 자신보다 많은 나들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존재한다.

모든 것에 무심한 채

그들이 입 다물게 해놓고 말을 내가 한다.

내가 느끼거나 느끼지 않는

엇갈리는 충돌들이

나라는 사람 안에서 다툰다.

나는 그들을 무시한다. 내가 아는 나에게 그들은

아무것도 불러주지 않지만, 나는 쓴다.

페르난두 페소아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백 년 전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만든 '리스본 가이드'는 놀랍게도 아직도 유용하다. 페소아는 자신의 분신들을 창조하여 스스로의 문학 속에 탄생시켰다. 생의 끝없는 인과율에 대응하는 방식이 소위 페소아의 이명(異名)이다. '알베이루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 리카르두 레이스, 안토니우 모라, 토머스 크로스, 바랑 드 테이브, 헨리 모어, 마리아 주제'는 가상의 인물들이면서도 생년월일과 일상과 세계관을 각기 부여받았다. 그들은 물론 페소아가 탄생시킨 페소아'들'의 생태계를 이루지만 페소아가 아니다. 그들의 고유한 문체, 인격, 목소리는 페소아와 다르게 변화 발전해 간다는 것은 페소아만의 독창성이다. 페소아의 '창작 기계'인 그들은 심지어 페소아의 문학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개체이기에 다른 자아처럼 행동했으며, 가령 1931년 알베이루 카에이루가 발표한 시를 알바루 드 캄푸스가 산문 '내 스승 카에이루를 기억하는 노트들'에서 반복해 게재하는 것은 분명 이채롭다.
송재학 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