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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
사마천은 '사기'에서 '가정이 어려울 때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훌륭한 재상을 찾는다'고 했다. 1948년 건국 이후 승승장구해오던 대한민국이 기로에 섰다. 산업화·민주화를 성취했고 음악·영화·드라마·먹거리 등 문화강국에 올라섰다.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 한국이 통일이 되면 세계적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 삭스는 2050년경 한국이 G2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반면 부정적 요소도 많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연구소는 저출산·고령화로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추락한 경제성장률과 자살률·양극화·사회적 갈등 지수도 매우 높다. 미래가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선인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누가 뭐라 해도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지도자이다. 그의 생각의 원형이 담긴 두 권의 책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1962)과 '국가와 혁명과 나'(1963)를 통해 5대 혁명 비전을 제시했다.
첫째 자주 외교. 미국·일본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자주적인 외교 노선을 정립했다.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사상, 공동의 운명으로 맺어진 6·25 전쟁 그리고 군사·경제면에서 각별히 친한 관계이다'. 현재의 한미 관계의 기본인 가치동맹, 경제안보 동맹을 주창했다. 한편으론 '선의의 비판, 건설적인 이견도 자유롭게 해야 한다'며 자주 외교 입장을 견지했다. 한일 협정을 앞두고도 '일본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당면한 내외 정세에 협조하다면 역사의 상처는 재론하지 않겠다'는 당당한 원칙을 정했다. 당시 경제개발을 위한 투자금 확보, 공산화에 맞서 한·미·일 협력 관계 구축이 절실했다. 한편 남북 분단을 활용하려는 일본의 이중적인 '상인적 태도'를 경고하기도 했다.
둘째 경제 혁명. '자립 경제의 건설과 산업 혁명의 성취 여부, 이것은 민족국가의 대개혁과 중흥 창업의 성패 여부를 판가름하는 전부이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라고 했다. '먹여 놓고, 살려 놓고서야 정치가 있고, 사회가 보일 것이며, 문화에 대한 여유가 있을 것이다.' 先자유·자주 경제의 건설, 後민주주의 발전 노선을 채택했다. 발전국가 모델의 성공을 기반으로 오늘날 세계 8위권의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셋째 정치혁명. 5·16혁명의 기치는 무능·부정부패한 정치의 척결이었다. '新정치 풍토의 마련은 국가의 기틀을 잡는 길이다.' 사람 중심의 붕당 정치에서 이념 중심의 공당 정치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지도자의 확고한 정치 신념 수립, 과감한 세대 교체를 추진했다.
넷째 남북통일. '우리의 최대의 비원은 조국의 통일이다. 당대에서 못 이루면 아들 대에서, 아들 대에서 불가능하면 손자 대에서 틀림없이 풀릴 날이 있을 것이다.' 통일이야말로 민족 중흥의 마지막 남은 과제이다.
마지막 국민의식 혁명. 게으르고 나태한 무사안일주의, 분파적인 사색 당쟁, 큰 것에 의존하는 사대주의를 문제로 지적하고 의식 개혁운동을 추진했다. '복지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민주주의 이념 아래 협동 단결하고, 자립·자조 정신으로 향토 개발'을 주장했다. 부정적 패배주의를 일소하고 '우리는 할 수 있다'(we-can-do)는 자신감을 고취했다.
시대 상황은 변했지만 과제의 본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역사는 시간의 축적의 산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선견지명과 통찰력을 온고이지신할 때이다. 우리는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나.서성교 건국대 특임교수·전 청와대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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