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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
초등학생이 '부모님에게 죄송하다'는 일기를 남기고 학교폭력을 암시하며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또 있었다. 그리고 학교폭력에 의해 피해를 본 주인공이 성인이 되어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드라마 '더 글로리'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방영되었다. 모두가 학교폭력이란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초등학생의 자살은 우리의 현실이고 가해자에 대한 복수는 판타지다.
요즘에는 신체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 행사 외에도 집단따돌림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겨난 사이버폭력 등이 새로운 학교폭력의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교육부의 2022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언어폭력(41.8%), 신체폭력(14.6%), 집단따돌림(13.3%) 순으로, 이는 2021년 1차 조사 대비 집단따돌림(14.5%→13.3%), 사이버폭력(9.8%→9.6%)의 비중은 감소하고, 신체폭력(12.4%→14.6%)의 비중은 증가하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피해 응답률은 1.7%(5.4만명)로 2021년 1차 조사 대비 0.6%포인트 증가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실시된 2019년 1차 조사 대비 0.1%포인트 증가했다. 학교 급별로는 초등학교 3.8%, 중학교 0.9%, 고등학교 0.3%로 나타나 모든 학교급에서 2021년 1차 조사 대비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코로나 종식 선언으로 학생들의 집단생활이 활발해지면서 학생들 간의 신체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학생이 학교폭력의 피해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데, '일이 커질 것 같아서' 혹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폭력을 신고한 학생 중 상당수가 신고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성인이라면 폭력행위를 형법에서는 폭행죄로 처벌하고 있는데, 형법 제260조에서 폭행이란 신체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의 행사를 말한다. 그러므로 집단따돌림이나 사이버폭력의 경우 신체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이 아니므로, 별도의 다른 법규로 처벌해야 하며 폭행죄로 처벌되기는 어렵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은 학부모나 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만큼 성숙하지 않다. 그들은 혼자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정신적 트라우마를 지닌 채 성인이 되어 사회부적응자가 되거나 그릇된 복수심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제를 다룬 드라마가 한국문화콘텐츠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드라마의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개인 간 폭행, 가정폭력, 학교폭력에 관대한 것은 아닐까.폭행에 대해서 합의만 하면 된다는 인식과 돈으로 보상할 수 있다는 인식을 지양하고, 절대로 폭행은 있어서는 안 되는 극악한 행위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육체적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아물지만, 학창 시절 폭력피해에 의한 정신적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자연 치유하기가 어렵다. 학교폭력의 피해로 인해 꽃봉오리 같은 아이들이 자살하거나 정신적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폭력에 대한 관용을 더 이상 허락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나 이문열의 '일그러진 영웅'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폭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학교교육에서 시작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생들의 성적과 입시제도에만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학교 현장에서 사라져가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을 다시 힘껏 외쳐야 할 것이다.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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