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수능에 더해 바뀌어야 할 것들

  •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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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6  |  수정 2023-07-06 07:02  |  발행일 2023-07-06 제22면
韓정부 공교육 정상화 위해

수능문항 개선 입시정책 제시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유지

학벌 중시 가치관 변화해야

진정한 교육개혁 이룰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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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학위공부 말기,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이어진 세계경제 불황으로 북미대학들도 고용을 줄이니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들 대상의 채용공고 자체가 귀했다. 그때 캐나다 친구 하나가 미국 명문대학의 정년트랙 정규직 교수직 오퍼를 받았는데 결국 거절했었다. 남편의 직장을 새 도시로 옮기기 마땅치 않아서였다고.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원래 도시에 남기로 했고 그 친구는 계약직 일을 시작했다. 인상적이었다. 두 도시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차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 한국 같으면 당연히 주말부부를 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싶어서. 몇 년 전엔, 캐나다 서부 대학의 정년트랙 정규직 교수로 있던 친구가 1년여 만에 토론토에 있는 대학의 비정년트랙 계약직으로 옮겨간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이 토론토에 있어 주말부부로 시작했는데 고속철도로 2~3시간이면 전국 어디나 갈 수 있는 한국과 달리, 토론토와 밴쿠버는 비행기로 5시간이 넘게 걸리고 항공요금만 당시에도 50~60만원이라 지속하기 힘들었던 것. 북미와 한국의 비정규직 처우 등이 차이가 있긴 해도 커리어 면에서 어려운 결정인데 그들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느낀 일이었다.

사교육 과열을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수능문항을 개선하겠다는 정부 정책과 관련한 한국 언론보도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접하며 생각한다.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큰 방향에 적극 공감하지만, 입시제도의 개선만으로 사교육이 줄어들까?

누구나 열심히 하면 학교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달리, 학교가 실제론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의 재생산 기관인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미국의 사회언어학 연구가 있다. 어릴 때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등 글을 읽고 쓰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란 중산층 아이와 그럴 시간도 문화적 자본도 없는 노동자 계층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학교에 가면, 중산층 아이는 학교의 모든 문화가 가정과 비슷하므로 자연스럽게 학업성취가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그래서 학교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기관이 되려면 그런 출발점의 격차를 고려한 적극적인 교육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 이렇듯 실제로 교육은 계급상승의 기관이 아님에도, 한국은 '학벌'이란 개념을 통해 교육을 계층 상승·유지의 장치라 믿게 한 이데올로기가 매우 성공적으로 작동한 사회이고, 그러니 개개인들의 의식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학벌'에 올인하게 됨으로써 그런 사회구조가 실제로 다시 강하게 재생산되는 구조이다.

사회구조란 이렇듯 개개인의 의식과 상호작용하며 힘을 유지한다. 그래서 공교육 정상화에는 입시제도 개선과 더불어 개인의 가치관 변화도 필수적이다. 캐나다에서 현지 사람들과 처음 만날 때 가족은 흔한 대화의 주제인데, 언니네가 미국에 있고 형부 직장 때문이라니 대화상대가 물었다. "What does your sister do?" (너의 언니는 무얼 하니?) 생각했다, 한국에선 남편이 뭘 해요 할 때 아내의 직업을 별도로 묻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국 부모들의 대화에서, 그 집 애 성적·학교·직업, 그 댁 남편 직업·재력 대신, 어떤 일·취미·봉사활동 하세요? 무슨 음악·책 좋아하세요? 등의 주제가 개인의 가치를 반영하는 문화라고 해도, 한국의 부모들은 가족해체를 불사한 사교육에 자신의 삶을 바치게 될까?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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