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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식 (영남대 명예교수) |
도시의 흥망성쇠를 산업입지와 제도의 측면에서 비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러스트 벨트(Rust Belt)와 선 벨트(Sun Belt)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곡물, 육류 등의 해상무역을 통해 국가와 도시의 성장을 추진했다. 건국 초기 미국의 성장은 유럽과의 교역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당시는 물자의 수송이 전적으로 해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해상무역의 발달은 해운으로 연결될 수 있는 미국 북부 러스트 벨트에 있는 도시들의 성장을 촉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러스트 벨트에 있는 도시들은 이때부터 미국 동부의 주요 항만들과 물길(강, 운하)을 연결해서 산업도시로서의 잠재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물길이 직접 연결되지 않는 도시는 내륙 항만과 연결되는 철도를 건설하여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기업가들은 러스트 벨트에 있는 도시들에 철강, 자동차 등 중공업 제품의 생산을 위한 공장을 건설하면서 이들 도시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성장한 대표적인 도시가 시카고,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클리블랜드이다. 이들 도시는 20세기 중반까지 번창했으나, 이후 쇠퇴의 길로 들어서면서 러스트 벨트로 불리게 되었다.
러스트 벨트 도시들의 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물길과 철도로 인해 혜택을 입었던 이들 도시는 도로의 확충과 자동차의 보급으로 교통(수송)수단이 다변화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기에다 미국의 노조 운동은 이들 도시에서 가장 먼저 확산되었다. 이러한 영향은 사용자와 노조의 역학관계에서 노조에 유리한 클로즈드숍(closed shop) 제도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러스트 벨트 도시들의 쇠퇴를 부채질하게 된 것이다.
한편 선 벨트 지역은 다른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1947년 미국 연방정부가 제정한 태프트-하틀리 법(Taft-Hartley Act)은 주(州)마다 실질적으로 클로즈드숍 제도의 채택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노동권법(Right-to-work law)의 제정을 가능케 했다. 이를 계기로 선 벨트 지역에 있는 주(州)들의 경우 노동권법의 제정으로 제조업체들이 노조의 영향을 적게 받게 되었고, 1950년대 이후 선 벨트 도시들의 성장을 견인하는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미국의 산업구조도 1950년대 이후 변화하기 시작해서 중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제조업은 퇴조하고 하이테크 산업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선 벨트 지역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스탠퍼드 대학교와 산학협력을 통해 태동한 실리콘밸리를 필두로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텍사스주 오스틴, 댈러스, 휴스턴, 콜로라도주 덴버 등의 도시가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들 도시는 '도시와 창조계급'(Cities and the Creative Class)의 저자인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가 명명한 창조계급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주거환경, 도시의 안전성, 지방정부의 서비스, 문화적 토양, 환경적 쾌적성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의 연구 결과는 보여준다.
러스트 벨트와 선 벨트의 성장과 쇠퇴는 교통인프라, 교통(수송)수단, 산업입지, 산업구조 그리고 제도가 어떤 연계성을 가지면서 변화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연계성과 상호작용이 도시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이제 우리 도시들도 도시의 성장과 쇠퇴를 결정짓는 역동적인 메커니즘 속에서 개별 도시가 처한 여건을 바탕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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