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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
맑은 하늘이 보고 싶어 시원하니 거실 창문을 열었다. 쨍쨍 햇볕이 내리쬔다. 기분 좋다. 빌딩과 빌딩 사이에 목을 내밀고 고개를 젖혀가며 보아야 하는 도시 하늘은 못내 아쉬움이 있다. 창문 너머 보이는 아파트의 모습은 마치 눈에 띄기 대회를 하는 것 같다. 도시 하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목을 내밀어 밖을 두리번거려도 하늘은 쉬이 잡히지 않는다. 마주 선, 때로는 빼딱하게 나를 찌르는 주변 아파트의 그로테스크함이 나의 시선을 먼저 누른다. 거기에 더해, 갈수록 제 잘남을 뽐내려는 듯 과격해지는 색채의 폭력으로 나의 감각은 곧 마비된다. 회색의 도시도 모자라 짙은 어둠이 대낮에도 느껴진다. 맑은 하늘을 쳐다보려는 내 생각은 벌써 사라지고 없다.
집에서 안과 밖을 이어주는 창(窓)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밖의 풍경이 고스란히 내게 투사되기도 하고 때로는 내밀한 나의 가정사가 밖으로 나가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창은 계절의 변화와 도시의 번다함까지 온도와 바람, 소리와 내음을 통해 안과 밖이 교감하는 지점이며, 나와 바깥세상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치이다.
고층 아파트에서의 창은 바깥의 풍경이 조감(鳥瞰)도의 형식을 띠어 거리에서 느끼는 감각과는 달리 다가온다. 이런 감각의 이질성이 천재 시인 이상으로 하여금 '오감도(烏瞰圖)'라는 작품을 착상케도 했으리라. 현재 서울대 공과대학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건축가이자 시인인 이상은 하늘을 나는 까마귀의 높이에서 바라본 골목길의 풍경과 그 속을 질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자신의 모습을 중첩시키고 불안과 희망을 토로하였다.
조(鳥)에서 점 하나를 빼면 오(烏)가 되듯, 건축 표현 방법으로서의 조감도를 살짝 비틀어 비구상 언어로서 도시에서의 인간 가치의 의미 회복을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그 시대에는 현재와 같은 고층 아파트가 없었지만, 이러한 바라보는 높이에서 오는 시각의 차이는 세상에 대한 인식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지난주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식이 개최된 열린송현녹지광장의 전망대 하늘소는 급속한 도시성장에서 파생된 새로운 이슈를 선사하고 있다. 임의로 만든 거대한 하늘소에 올라 사람들은 희게 드리운 천들 사이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왜 자꾸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고, 건축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전망대를 다양한 파빌리온의 형태로 만들어 도시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일까.
날아다니는 새가 아름다운 것은 하늘이라는 배경이 있고, 그 배경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에 바라보는 우리가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창문 너머 나의 도시 하늘에는 우뚝 솟은 아파트가 하늘을 이겨 배경이 되고, 강력한 색채의 측벽은 주인공이 되어 존재감을 확인시킨다. 보고 싶은 하늘이 없다.
하늘을 향한 건물, 편안한 하늘을 위해 아파트의 입면과 하늘과 맞닿는 상층부의 디자인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하늘이 없는, 하늘 보기가 두려운 현재의 도시환경은 사람들에게 많은 정서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파트 창을 통해 느끼는 나의 감정 변화는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창을 열고 참아 내거나, 커튼을 치고 외면하거나, 나름의 방식으로 그럭저럭 선택해서 살아간다. 과밀해지는 도심 주거 해결책으로서의 아파트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최소한 편안하게 하늘을 보고 즐길 수 있는 명랑한 아름다움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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