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저가 경쟁이 계속되면서 2차전지도 '가성비' 좋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등 삼원계 배터리에 집중해온 대구경북지역 양극재 제조사인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엘앤에프도 이젠 실질적 액션을 취해야할 상황이 됐다.
◆테슬라발(發) LFP 돌풍…국내 완성차 업계도 올라타
국내 대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업체 KG모빌리티는 최근 준중형 SUV인 토레스의 전기차 모델 '토레스 EVX'에 중국 비야디(BYD)의 LFP 배터리를 탑재한다고 밝혔다. 가성비를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기로 한 만큼 LFP 배터리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곽재선 KG모빌리티 회장은 "중국산 배터리 성능 문제를 제시하면 몰라도, 단순히 중국산이라는 점을 두고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건 비경제적인 논리"라며 "국내 배터리 업체와도 관계를 맺고 있고, 연구소와 협의도 펼치고 있다. 차종마다 최적의 조건을 찾아 알맞은 배터리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기아의 최신 전기차 모델 '레이 EV' 역시 중국의 CATL이 생산하는 LFP 배터리로 움직인다. 기아는 중국 현지 시장 공략을 위해 'EV5'에 중국산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적은 있지만, 국내 판매용에 중국산이 들어간 건 레이 EV가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출시할 '캐스퍼 일렉트릭'에도 LFP 탑재를 예고했다.
테슬라·폭스바겐·포드·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은 이미 LFP 배터리에 매료됐다.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테슬라가 발표한 '3차 마스터플랜' 보고서엔 LFP 배터리가 전기차 업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것이고, 테슬라도 이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이같은 현상은 배터리 시장 현황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지난달 하순 SNE리서치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CATL은 매출액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29%, 출하량 기준 33%를 기록하며 선두를 차지했다. 고성장세를 보이는 BYD(3위)도 매출액 기준 9%, 출하량 기준 11%를 기록했다.
◆2차전지 업계 "고객이 원하면 만들어야 "
국내 2차전지 업계는 1회 충전으로 긴 거리를 이동할 수 있고, 힘이 좋은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만 고집했다. LFP 배터리는 '성능이 떨어지는 저가용'으로 인식해왔다. 그랬던 LFP 배터리의 입지가 최근 급상승했다. 가장 큰 이유는 '고객사 요구' 때문이다.
현재 국내 배터리 3사의 해외공장 일부 하이니켈 배터리 라인은 수요가 없다. 가동을 멈춘 상황일 정도로 흐름이 나쁘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는 셈이다. LG화학은 지난달 24일 중국 화유그룹과 양극재 공급망 관련 포괄적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양사는 모로코에 연산 5만t 규모의 LFP 양극재 합작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주로 북미 지역에 공급할 LFP 양극재를 2026년부터 양산하는 게 목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난징공장 에너지저장장치(ESS) 라인 일부를 LFP 라인으로 전환키로 했다. 삼성SDI는 울산에 LFP 배터리 생산시설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온은 지난 3월 2차전지 산업 박람회인 '인터배터리'에서 LFP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한 바 있다.양극재 업체도 시장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경북 포항을 생산 거점으로 활용하는 에코프로그룹은 현재 LFP 배터리용 양극재 파일럿 라인 구축을 계획 중이다. 내년 6월 에코프로비엠 오창공장에 해당 라인을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에코프로그룹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메이커들이 LFP로 관심을 돌린 만큼 그 수요에 맞출 필요가 있다. 현재 다방면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다만, 하루 이틀 만에 중국 기술력을 쫓긴 어렵다. 파일럿 라인과 실제 생산 라인 가동은 다른 차원이다. 고객사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달 '2030년 비전 선포 행사'를 통해 LFP 배터리용 양극재 협업을 추진하는 업체가 많다고 전했다. 포스코그룹은 생산기술 개발이 끝나는 대로 고객사와 공급계약 협상을 진행할 방침이다. 대구 대표 양극재 제조 업체 엘앤에프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삼원계 양극재와 LFP 양극재는 기술부터 생산라인, 영업망까지 서로 다르다. LFP 양극재 수요와 개발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업계 경쟁력을 공고히 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문제"라고 했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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