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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
얼마 전 일이다. 지인이 새로운 외국인 친구가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상대는 일본인이고, 직업은 공무원이라는 정보도 알려줬다. 지인은 원래 일본인들과 교류가 있는 편이다. 이전 여자친구도 일본인이었기에 새 친구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의구심이 커졌다. 가끔 지인이 전해오는 새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범상치 않아서다. 지인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스포츠카를 몰 정도로 재력이 탄탄하고 인성이 바른 데다 미모까지 겸비한 재원이었다. 더욱이 나이도 10살 이상 어렸다. 목소리조차 들은 적이 없는 상대에 대한 환상이 너무 과해 보였다.
순간 '로맨스 스캠'이 떠올랐다. 로맨스 스캠은 애정을 가장해 피해자의 호감을 얻은 뒤 돈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사기 범죄다. 그렇다고 바로 범죄가 의심된다는 말을 하진 못했다. 피해 본 사실이 없거니와 괜한 참견으로 비치는 것도 싫었다. 며칠 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국내 주식도 하지 않는 지인은 그새 코인거래소를 통해 이더리움을 산 뒤 특정 사이트에 투자까지 한 상태였다.
"첫 투자 15분 만에 5만원의 수익을 냈다"며 흡족해하는 지인에게 몇 개의 기사를 갈무리해 보냈다. 지인의 사례와 가장 유사한 수법의 로맨스 스캠을 다룬 기사였다.
다행히 지인은 투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규모 전세 사기부터 전청조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기 관련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난해에만 32만5천848건의 사기 범죄가 발생해 16만9천528명이 검거됐다. 매일 892명 이상의 피해자가 생겨나는 셈이다.
사기가 판을 치는 이유는 뭘까. 원인은 단순하다. 범죄를 저지르기 쉽고, 수익은 높은 데다 잡힐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잡혀도 그만이다. 형기를 채우면 또 사기로 돈을 번다. 2021년 사기 범죄자 17만명 중 7만명 이상이 전과자였다. 이 중 전과 9범 이상이 2만6천명에 달한다. 죄의 무거움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사기 범죄는 날로 진화 중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활 양식의 변화에 따라 수법이 변화한다. 수법 분류가 의미 없을 정도다. '매매 가장'이나 '가짜 속임'이 많지만 '기타 수법'이 절반에 달한다.
사기 범죄가 국제화·고도화할수록 범인 잡기는 힘들어진다. 비대면 수법이 많아지면서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기는커녕 신원 확인조차 힘든 경우가 많다. 가상사설망(VPN) 같은 기법을 활용해 수사기관의 온라인 추적을 피하는 건 예사고, 아예 본진을 해외에 두고 국내에는 점조직으로 일부만 활동한다. 사기 범죄 검거율은 2018년 75%에서 지난해 59%로 떨어졌다.
사기 범죄의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사회 전반에 불신을 조장한다. 비신뢰 기반의 불신 과잉 사회에선 거래를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만큼 국가 신뢰도와 경쟁력도 떨어진다. 사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다. 숙지지 않는 사기 범죄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대응도 개인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 개인 보완을 철저히 하고 사기 수법을 숙지한다고 해도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다. 법이 더욱 냉혹해져야 한다. 쉽게 저지르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당하는 이만 원통한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박종진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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