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수석교사의 마지막 가르침…"아이들 하는 모든 일은 귀하다"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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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5 07:32  |  수정 2024-02-05 07:33  |  발행일 2024-02-05 제11면
■ 42년간 헌신…최혜경 교사 퇴임기념 수업공개&워크숍

수업
최혜경 수석교사. <대구시교육청 제공>

지난달 31일 오후 2시 대구 남대구초등 강당. 4학년 아이들 27명이 책상에 앉아 다가오는 수업을 기다리고 있다. 전자칠판에는 12등분이 된 직사각형이 그려져 있고, 그중 여섯 칸에는 색칠이 돼 있다.

아이들을 만난 최혜경 수석 교사의 수업 첫 마디는 인상적이었다. "여러분, 수업 중 어떤 생각이 들더라도…"라고 운을 떼자, 아이들이 동시에 "맞는 생각이다!"라고 힘차게 대답했다. 최 교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한번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야기하기"라고 주문했다. 말을 할 때나 들을 때, 항상 웃음을 머금은 채였다.

대구 초등교육 '교사들의 스승' 최혜경 교사
후배 교사 250여 명에 수업 노하우 공유
"수업시간 정답 맞히는 것 중요하지 않아
아이들 변하고 성장하는 것 필요할 뿐"


본격 수업에 들어가면서는 칠판을 가리키며 "제가 여러분께 무엇을 묻고 싶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놀라웠던 것은 이 물음을 던지자마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손을 들지 않는 아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대답했다. 틀릴까 봐 주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수업에서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교사는 손을 든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 답변을 경청했다. 정답과 거리가 먼 답변도 적잖았지만 최 교사는 답변에 개입해 수정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답을 칠판에 고스란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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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경 수석교사가 이달 말 퇴임을 앞두고 후배 교사들에게 수업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수업 후 20분이 흘렀을까. 칠판에 수십 개가 넘는 답이 기록되면서 아이들은 '고민해 보니까 내가 틀린 것 같다' '○○가 말한 게 더 맞는 거 같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수정하거나 맞고 틀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 교사는 "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이건 동의가 될까?"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자연수의 성질을 깨닫도록 유도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약수와 배수의 개념을 설명하거나 교과서대로 빠짐없이 전달하는 역할을 맡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이날은 초등교육에 42년간 몸담은 최혜경 수석교사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하는 '모두의 수업'을 몸소 실천했다. 그를 존경하고 그의 수업을 배우고자 하는 250여 명의 교사들이 이 자리를 찾았다. 대구시교육청이 직접 최 교사의 '퇴임기념 수업 공개 및 워크숍'을 열었다.

공영순 대구시교육청 장학관은 "현장에서 오랜 기간 연구하며 축적한 수업 철학과 노하우를 공유해 교원의 수업 전문성 신장 및 학생주도수업 문화 확산을 위해 공개수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최 교사는 제26회 대구교육상, 제6회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 수상자로 대구 초등교육에서 '교사들의 스승'으로 통한다. 2009년 수석교사가 된 이후 수업 컨설팅, 교내외 연수 등에 매진하며 자신의 수업 철학에 대해 무수한 교원들과 나누는 작업을 해왔다. 그런 그가 1982년 대구 동천초등을 시작으로 남대구초등까지 40여 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며 오는 29일 퇴임한다.

이날 공개 수업 1부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자연수의 성질 탐구하기' 수업을 진행했다. 2부에서는 '후배 교사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 공감 톡톡(Talk, Talk) 콘서트'를 열고, 그동안 체득한 수업 철학과 지혜를 공유했다.

수업 전 짧은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수업에 대해 "학생을 떠나 인간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존재"라면서 "깨닫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 양이 다를 뿐 모든 아이들도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수업을 하면서 '아, 내가 이것을 알아냈구나' 하는 경험을 했다면 수업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오답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최 교사는 "수업이니까 오개념이란 없다. 수업에서 정답을 맞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변하고 성장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라고 확신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너희들이 하는 모든 일이 다 귀한 거다"라고 짧게 답했다.

구영미 남대구초등 교장은 "최혜경 선생님은 아이들의 성장에 대해 누구보다 반가워하며 이야기하셨고, 후배 교사들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항상 후배들을 칭찬하는 훌륭한 교사"라면서 "'퇴임 마지막까지 수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이 교사로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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