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투표는 아직 '벽'…여전히 미흡한 장애인 참정권 보장

  • 김태강
  • |
  • 입력 2024-04-08 18:18  |  수정 2024-04-08 18:20  |  발행일 2024-04-09 제9면
일부 투표소, 청각장애인 위한 안내 포스터 뒤늦게 붙여
시각장애인에게 51㎝ 비례대표 용지는 비현실적
발달 장애인 위한 그림 투표 용지는 수년째 도입 안돼
KakaoTalk_20240408_165725465
지난 5일 사전투표를 위해 대구 남구 대명5동행정복지센터를 찾은 청각장애인 구가영씨는 투표 현장에서 '영상통화 수어 통역 제공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지 않아 당황했다. 사진은 대구 남구 대명5동행정복지센터 입구 전경. 출입로 인근이 좁은 골목길이어서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들의 경우 접근하기 어려웠다.
KakaoTalk_20240408_165658209_01
대구시농아인협회에 붙어있는 '영상통화 수어 통역 제공 안내 포스터'

제22대 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5일 대구 남구 대명5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은 청각장애인 구가영(여·32)씨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청각장애인에게 투표 방법 등을 안내하는 '영상통화 수어 통역 제공 안내 포스터'가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뒷사람에 밀려 투표장에 들어간 구씨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눈치껏 투표를 해야 했다. 구씨는 "선거사무원들이 모두 마스크를 낀 탓에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며 "투표소에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제22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나, 장애인은 여전히 온전한 참정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장애 유형에 따른 투표 편의가 제공되지 않아 투표는 물론, 선거 관련 정보를 얻는 것도 힘든 실정이다.

8일 대구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공보물 제공은 의무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영상 공보물 제공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청각장애인은 어릴 적부터 수어로 언어를 배워 긴 문장이나 글을 이해하기 어렵다. 때문에 후보자에 대한 정보와 공약을 이해하려면 자막 또는 수어가 표시된 공보 영상이 필수지만, 문장 이해 능력이 일반인과 같다는 인식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일부 공보물에 QR코드가 있지만, 너무 작아 확인이 어려운 데다 어르신들은 활용 방법조차 몰라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청각장애인에게는 토론회도 이해하기 어렵다. 영상으로 송출되는 후보자 토론회 경우 수어 통역이 지원되지만, 2명 이상 후보자가 참가하는 토론회 특성상 1명의 수어 통역사로는 역부족이다. 구씨는 "사람마다 목소리, 어투 등이 다른데 수어 통역사는 1명이라 이해하기 어렵다"며 "후보자 1명당 수어 통역사 1명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각장애인들도 참정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오는 10일 실시되는 이번 총선 지역 투표소 655곳 중 309곳은 점자 유도 블록이 없다. 투표소로 가는 길에도 점자 유도 블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시각장애인은 혼자선 투표소로 갈 수도 없다.

51.7㎝에 달하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도 현실적인 투표 진입장벽으로 꼽힌다. 김창연 대구시 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았는데 너무 길어 놀랐다"며 "점자로 투표용지를 파악하고 구멍이 뚫린 공간에 기표해야 하는데, 시각장애인에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 역시 투표가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이들 단체는 발달장애인을 위해 공약을 쉽게 풀어쓴 공고물이나 정당 로고 및 그림이 포함된 투표용지 도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박동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선거 공고물이나 투표용지에 있는 공약, 당명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림이나 후보자 사진 등이 투표용지에 표시돼야 한다"고 했다.

대구시 선관위 관계자는 "사전투표 당시 일부 투표소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본 투표 당일엔 이를 최대한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태강기자 tk11633@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김태강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