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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조문국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 이곳에 들어서면 '울릉도사적(鬱陵島事蹟)'(경북도 유형문화유산)이라는 명패 아래 고서 한 권이 펼쳐져 있다.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독도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 담긴 비장의 자료다. 원본은 지하 수장고에서 365일 24시간 항온 항습 상태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
마침내 수장고(收藏庫)가 열렸다. 이곳은 의성 조문국박물관의 지하. 전쟁이 나 포탄이 터져도 끄떡없다는 학예사의 말처럼 은행 금고에서나 봄 직한 육중한 철문이 버티고 있었고, 문짝마다 디지털 보안장치가 달려있었다. 일반인은 물론 언론에도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이 지하 수장고에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장한상 장군의 후손'과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몇 해 전 작고하신 장자진 종친 어른이 이곳에 장군의 귀한 유물들을 위탁 보관한 이후 후손들도 유물의 실물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 했다. 보안장치가 해제되고 또 하나의 문을 더 열고 나서야 작은 복도가 나타났다. 금속류는 금속류대로, 도·토기류는 도·토기류대로, 종이 같은 지류는 지류대로 제각각 필요한 온도와 습도가 다르기 때문에 물질별로 각자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 장군의 기록을 마주하기 위해선 세 번째의 육중한 문을 한 번 더 열어야 했다.
"전기 요금만 한 달에 1천800만원 들어갑니다."
학예사의 말에 놀랄 새도 없었다. 지류 수장고의 문이 열리자 천장까지 자리한 오동나무 유물장 몇십 개가 어마어마한 존재감으로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잠들어 있던 330년 전 장군의 기록이 후손들 앞에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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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국 학예사가 오동나무 서랍장에서 '절도공양세실록'을 꺼내 보이고 있다. 수백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고서는 습도조절 능력이 뛰어난 몇 겹의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돼 있다. 벽면도 습기를 빨아들이는 규조토 패널로 되어 있고, 여기에 더해 항온항습기가 24시간 365일 돌아간다. |
◆독도에 관한 최초의 문헌기록 '울릉도사적(鬱陵島事跡)'
"이것이 장한상 장군의 울릉도 수토보고서입니다. '울릉도사적'이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 보시면 독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나오죠."
책장을 넘기는 최강국 학예연구사의 손끝이 더없이 조심스럽다. 그는 백화점 명품 매장 직원들처럼 수장고에 들어서자마자 깨끗한 흰 장갑부터 착용하더니 조심스레 오동나무 서랍을 열고, 그 안에서 한지로 덮어놓은 상자 하나를 꺼내 또 열고, 상자 안에서 고운 비단 천으로 감싸인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냈다. 이 모든 과정이 고귀한 의식을 치르는 듯 너무나 경건하고 엄숙해서 지켜보는 내내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울릉도사적이 독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 문헌으로 알려지면서 그 책이 따로 있는 줄 아는 분들도 많은데, 실은 '절도공 양세 실록(節度公 兩世 實錄), 그러니까 절도사를 지낸 양세(兩世)… 두 세대라는 말이죠? 아버지 장시규 장군과 아들 장한상 장군의 두 세대에 관한 실록이다, 이런 제목입니다. 이 책 안에 울릉도사적이 실려 있어요."
울릉도 중봉서 육안으로 독도 확인…조정에 공문서 보고
그 기록 담긴 '절도공양세실록' 의성조문국박물관 수장
학예사 "일본 억지주장 맞설 무기…다시 학술대회 열 것"
오오! 단번에 이해가 확 됐다. 한자를 보면 어디서 어떻게 끊어 읽어야 할지 난감한 현대인들에게 그야말로 친절한 맞춤식 설명이다. 그의 손끝만 따라가면, 낯설고 어렵기만 하던 조선 조정의 관료 용어들도 거뜬히 이해할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어, 여기네, 여기!"
매의 눈으로 책장을 보고 있던 순천장씨대종회 장선호 회장이 책 속의 한 구절을 가리켰다.
"동망해중 유일도(東望海中有一島). 동쪽으로 바다를 바라보니 섬 하나가 있다!"
역시나 친절한 끊어 읽기 덕분일까? 망망대해 같은 한자들의 물결 속에서도 선명하게 '섬' 하나가 보였다. 동시에 그 섬 옆으로 작은 의문 하나가 솟구쳐 올라왔다.
'이 섬이 독도라고?'
"그렇지! 정확하게 독도를 말하고 있잖아."
동행한 후손 장대수씨는 마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설명을 덧붙였다.
"크기는 울릉도의 3분의 1이 안되고 거리는 300여 리(대략 120㎞)에 이른다. 바로 뒤에 이렇게 적혀 있잖아. 이건 독도일 수밖에 없지. 일본은 이 섬이 현재의 죽도를 말하는 거라고 우기지만, 겨우 2㎞ 떨어진 죽도를 말한다고 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잖아."
일본 이야기까지 나오자 일순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곳은 항온 항습을 유지해야 하는 수장고 아닌가. 긴 이야기는 나가서 합시다!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이야기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이 사람이다! 당시만 해도 지자체에서 인물을 발굴하고 선양하는 사업이 있었거든요. 사실 의성 하면 다들 마늘밖에 모르는데, 이 장한상 장군을 띄워야 된다고, 일본의 주장에 명백하게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이곳 의성에 문서로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학술대회도 하고 자료 만들어서 배포도 하고 열심히 뛰었죠. 도청의 독도 관련 부서도 찾아가고 미팅도 몇 차례나 하고. 그런데 그게 될 듯 될 듯하더니, 또 흐지부지되고 그러더라고요."
11년 전부터 장한상 장군 특별전을 기획했던 배기석 학예팀장은 그 중요성과 가치에 비해 장군의 업적이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핵심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기 위해 일본 자료까지 다 모아서 정리하기도 했다.
"일본은 '16~17세기 때 너희가 독도를 인지하지도 못했지 않느냐'고 하는데, 오늘 봤잖아요? 장한상 장군이 울릉도 가서 독도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남긴 기록도 있고, 그 내용을 비변사 장계로 올렸다는 기록도 있어요. 공문서로 조정에 보고한 것이죠. 그런데 일본 주장대로 당시 조선 조정에서 독도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거죠."
당시 동북아역사재단 이원택 연구위원과 장군이 올렸다는 '비변사 장계' 원본을 찾는 작업도 했었다고 했다. 하필 담당부서가 바뀌면서 그 일을 이어갈 수 없었는데, 올해부터는 이곳 박물관에서 다시 장한상 장군 학술대회를 열 수 있게 됐다며 신이 난 얼굴이었다.
"평생 무관으로 사셨던 장한상 장군이 가시면서까지 우리 후손들에게 든든한 무기를 남겨주신 거예요. 아직도 계속되는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 그 무기를 제대로 잘 쓰는 게 이제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 나지막이 또박또박 말하는 후손들의 얼굴에는 무사의 결기가 어른거렸다. '기록'이라는 무기를 쥐고, 장군의 수토여정을 따라가며 온 국민에게 이 역사를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장군의 발자취를 좇아가다 보니, 어째 동행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수많은 장군의 후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길 위에 있었을 것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길을 떠나 볼까?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 기자 zone5@yeongnam.com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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