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공양세실록(節度公兩世實錄)'. 가로 20㎝ 세로 31㎝, 종이에 먹, 조선시대, 경북도 유형문화유산 |
부자(父子)간에 절도사를 지낸 교동공(喬桐公) 장시규(張是奎)와 그의 둘째 아들 북병사공(北兵使公) 장한상(張漢相) 양대에 대한 실록으로 '울릉도사적'이 실려 있다.
'울릉도사적(鬱陵島事蹟)'은 1694년(숙종20) 9월19일부터 10월3일까지 울릉도를 수토(搜討)한 삼척(三陟) 영장(營將) 장한상이 쓴 기록이다. 이 글은 총 15면으로 되어 있는데, 장한상은 울릉도 중봉(中峰)에서 육안(肉眼)으로 독도를 보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울릉도의 부속 도서인 독도가 우리나라 땅임을 확인시켜주는 최초의 기록이다. 관련한 세부 기록 전문을 소개한다.
"9월20일부터 10월3일까지 머무는 동안 늘 비가 오고, 맑은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9월에 함박눈이 내리는데 중봉의 산허리에는 한 자 남짓 눈이 쌓였습니다. 섬의 사방을 배를 타고 돌면서 살펴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공중에 우뚝하고 바위들은 층층이 벽립(壁立)해 있는데, 간혹 틈이 있기라도 하면 거기서 새어 나오는 물이 물줄기를 이루어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을 듯하였고, 그 사이사이 작은 물줄기나 마른 계곡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섬 주위를 이틀 만에 다 돌아보니, 그 이수(里數)는 150~160리에 불과하고, 남쪽 해안에는 황죽(篁竹)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5리쯤 되는 곳에 작은 섬(울릉도 옆의 죽도를 가리킨다)이 하나 있는데, 그리 높고 크지는 않으나 해장죽(海藏竹)이 한쪽에 무더기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비 개고 구름 걷힌 날, 산에 들어가 중봉(中峰·성인봉을 가리킨다)에 올라보니, 남쪽과 북쪽의 두 봉우리가 우뚝하게 마주하고 있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삼봉입니다. 서쪽으로는 구불구불한 대관령의 모습이 보이고, "동쪽으로 바다를 바라보니 동남쪽에 섬 하나가 희미하게 있는데, 크기는 울릉도의 3분의 1이 안 되고 거리는 300여 리에 이릅니다."
-역주(譯註):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유미림 연구원(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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