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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은 서구 권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틀을 활용해 세계를 문명과 야만으로 나누고,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펼쳤는지 살펴본다. 19세기 유럽의 식민 세력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하기 위해 열린 베를린 회담의 한 장면.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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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바드라 다스 지음/장한라 옮김/북하우스/408쪽/2만원 |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아는 것이 힘이다' '시간은 돈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등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러한 말들은 믿어 의심치 않은 지혜로 우리 사회에서 수용되고 있다. '과학의 합리성' '교육의 힘' '시간의 중요성' '글의 영향력' 등을 대표하는 보편적인 신념들은 현대 문명의 성취이자,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로 공유된다.
하지만 이를 순수하게 옳은 것으로만 생각해도 될까? 오히려 너무 당연하게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그 안에 깃든 역사적 의미를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현대 문명의 성취이자, 오랜 시간 지켜온 신념으로 공유되는 열 가지 핵심 가치의 이면을 살펴보며, 이 강력한 말들 속에 어떤 '권력'의 프레임이 숨겨져 있는지, 역사와 우리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본다.
우리는 흔히 과학은 가치 중립적인 이성의 최고봉이고, 교육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교양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시간은 효율적으로 활용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원이며, 글은 생각과 사건을 표현할 수 있는 마법의 도구로 받아들여진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회 또는 사람은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간주한다. 근본적인 질문은 여기에서 나온다.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박힌 '과학' '교육' '글' '시간' 등의 개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우리가 세운 문명화의 기준은 어디에서 나왔나? 누가 확립했으며, 결정적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있는가?
저자는 근사하고 당연하게 보이는 이러한 가치들이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태동과 함께 모양을 갖추고 발전하며,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열 가지 핵심가치의 생성과정을 탐구하며, 서구 권력이 어떻게 자신들의 프레임을 활용해 세계를 문명과 야만으로 나누고,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펼쳤는지 파헤친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현대사를 시작해 해방 이후에는 6·25전쟁을 겪고 남북으로 갈라진 채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서구 문물을 바탕으로 사회 체계가 형성되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선진 문명이란 명목으로 수용된 서구 세계의 사상과 가치관은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고,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아쉽지만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세계의 프레임마저 그대로 내면화해 우리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며, 이제 프레임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되찾자고 제안한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즐겁기보다 고단한 일일 수도 있다.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며,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이 수용해온 신념들을 바닥부터 뒤집어엎고 부정해야 하는 과정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권력의 프레임을 벗어나, 역사를 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역사를 읽는 진정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이다.
저자 수바드라 다스(Subhadra Das)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과학사와 철학사를 전공했고, 동 대학교 박물관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과학적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연구한다. 팟캐스트, TV, 라디오 등에서 대중과 활발히 접촉하며, 권력이 조작하고 숨긴 역사를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세계사를 연대, 사건, 인물과 같은 기존의 주제가 아닌 개념과 생각을 중심으로 풀어내며 역사 분야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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