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판단력 의심케 한 비상계엄…대혼란 길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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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05  |  수정 2024-12-05 07:03  |  발행일 2024-12-05 제23면

3일 밤 10시25분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4시27분쯤 생중계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했다. 이에 앞선 오전 1시쯤 국회가 190명의 의원들이 참석해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키면서 비상계엄의 효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기까지 많은 국민은 엄청난 충격과 불안 속에서 TV로 생중계되는 국회 본회의 과정을 지켜봤다.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개회를 기다리는 동안에 계엄군이 창문까지 깨면서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는 장면을 본 국민은 참담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197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있었던 일이,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어찌 처참하지 않았겠는가.

비상계엄 선포 사태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판단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월 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비상계엄설을 주장했을 때, 여당 인사 뿐 아니라 대통령실조차 말도 안되는 괴담으로 치부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더라도 국회가 과반수 의결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즉시 해제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까지 들면서 비상계엄설을 반박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국회의 해제 요구에 따라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검사 출신으로 누구보다 법률을 잘 안다는 윤 대통령의 판단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이런 판단을 하도록 놔 둔 대통령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민주당의 입법 폭거가 과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고,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 소추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은 야당의 입법 폭거보다 훨씬 심각한 법 질서 교란 행위다. 야당과의 대화를 통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들을 비상계엄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다.

비상계엄 선포는 엄청난 후폭풍을 물고 올 것이다. 많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대한민국의 국격을 크게 떨어트린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훗날 같은 시도를 하는 일이 없다. 당장 윤 대통령에 대한 문책은 불가피할 것이다. 선포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는 없었는지, 이 과정에서 권한 남용은 없는지부터 따지게 될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의 헌법 질서 위배 여부가 공론화될 것이다. 헌법상 비상계엄은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경찰력만으로는 도저히 공공 안녕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누가 봐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비상계엄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많은 헌법학자들이 이번 사태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국은 이미 대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야당 일각에서 주장하던 윤 대통령 탄핵은 이제 일반 국민의 입에도 오르내릴 것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장관을 내란죄로 고발하고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동시에 계엄사령관, 경찰청장 등 군과 경찰의 주요 가담자도 내란죄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질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실의 비서실장 등 핵심 비서진들은 전원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이제는 수습이 중요하다. 수습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입장은 매우 중요하다. 윤 대통령의 수습 의지와 역량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동시에 여야 정치권은 국민과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수습에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의 혼란이 길어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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