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憲裁(헌재)의 시간', 역사적 소명과 엄중함 판결에 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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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07  |  수정 2025-03-07 07:09  |  발행일 2025-03-07 제27면

대한민국은 지금 헌법재판소에 국가적 에너지를 쏟아부은 상태다. 헌법에 기초한 최상위 재판기구에 과부하가 걸렸다 해도 무방하다. 당장 나라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 파면 여부를 일간 결정해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에서부터 감사원장, 법무부 장관, 야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에 이르기까지 10여 명의 중요 인물이 헌재의 최종 판단인 파면의 가부(可否)를 기다리고 있다. 국가 명운을 가를 사안들을 소수의 법관들에게 맡긴 셈이다. 정치가 실종되면서 헌재란 공간에 모든 쓰레기 더미를 던져 버린 꼴이다.

헌재의 판단은 일반 형사재판처럼 유무죄를 가려 형벌을 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위헌(違憲) 즉 헌법을 위반했느냐, 법적 규범을 침해했느냐를 두고 판단한다. 이어 위반의 정도와 상당성, 나아가 '중대성'을 놓고 재판관 개개인이 결심하는 형태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45년 만의 12·3계엄 발동이 헌법 정신, 법률의 규칙을 얼마나 초과했고 또 그 중대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름한다. 노무현·박근혜 탄핵심판의 판례에서 보듯, 대통령 파면으로서 얻는 국가적 이익과 손실을 따진다. 공리주의적 관점이다. 법을 떠나 정치적·국민적 여론의 요소도 가미될 수밖에 없다. 한 총리 탄핵을 비롯한 다른 소추안도 마찬가지다.

헌재 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추천한다. 임용에서부터 정무적 배경이 깔려 있다. 작금의 헌재를 바라보는 시선도 신뢰와 불신이 엇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치주의 대한민국이 이 난국을 헤쳐갈 현실적 길은 지금 헌재의 손에 쥐어져 있다. 우리는 헌재 재판관의 법률적 양식, 국가 이익과 미래를 저울질 할 혜안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매일 재판관들의 비밀 평의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헌재의 시간은 짧지만 길다. 재판관 각자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는 심정으로 판결에 임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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