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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경 사회에디터 |
사람 마음은 똑같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고통스러운 일은 깡그리 잊고 싶어 한다. 실제 '머릿속 지우개'는 뜻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최근 접하게 된 두 개의 끔찍한 상황들이 다시 국민적 악몽의 연료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일주일째 활활 타오르다 겨우 진화된 경북 의성발 대형 산불은 망각(忘却)이 쉽지 않을 듯하다. 울창한 산림뿐 아니라 피해자 마음도 온통 잿빛이 됐다. 무려 27명이 연무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르신들은 도자기를 굽는 가마 속 온도(최대 1300℃)까지 치솟는 불길을 피하려다 도로나 차량 안에서 숨졌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도 새삼 실감했다. 야간 진화작업은 속수무책이었다. 하늘만 쳐다보며 비 오기만 기도할 뿐이다. 첨단기술 강국이 '야간진화' '인공강우'는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은 참담했다. '소량'의 눈과 비가 분노한 산불의 기세를 겨우 잠재웠다. 역대 최대 피해를 낸 대형산불이라는 타이틀로 국내 재난사(史) 분량만 더 두툼해졌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결과의 후폭풍도 두렵다.
추상같아야 할 헌법재판소는 변론종결 후 평의를 시작한 지 38일간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만 봤다. 헌재 결정은 법원 선고처럼 '합의제'가 아닌 '협의제'인데도 한참을 머뭇거렸다. 일면 사안의 엄중함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무 지체했다. 야당은 재판관 한 명을 더 채우겠다며 핏대를 올렸다. 야당 초선의원들은 국무위원 줄탄핵, 국정마비라는 섬뜩한 말을 내뱉으며 압박했다. '내란 프레임'에 트라우마가 있는 여당은 '입법 내란'이라며 맞불을 놨다. 가뜩이나 혼란한 정국을 더 악화시켰다. 극단적 이념에 경도된 진영논리가 판치면서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할 중도층마저 흔들렸다. 우여곡절 끝에 탄핵심판 선고기일(4월4일)은 공지됐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국민들은 두렵다. 확실한 승복 의지가 없는 현 상황에선 유혈사태에 버금가는 대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정치가 유발한 끔찍한 사회적 재난으로 점철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격앙된 민심을 가라앉힐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돼 작동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공포와 불안감을 잉태하는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지 못하면 국민들은 악몽에 더 자주 시달리기 십상이다. 끔찍하고 무서운 기억들은 금세 사라지질 않는다. 그 원인 진단 후 나온 대책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이상기후에 따른 산불 대형화에 적합한 대피 매뉴얼 실천, 진화작업 전문성 확보, 대형헬기 및 군(軍)장비 조기 투입, 임도 확충 등등. 다만 캐비닛 서류뭉치 더미 속에서 쉽게 나오질 못한다. 실천이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만 거론하지 말고 지금의 혼란정국에 일부 원인을 제공한 국회 특권에 대한 수술도 감수해야 한다. 대선과 총선을 같이 치르는 것도 이젠 고민해볼 때다.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에서 깨어나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 맹목적이 아닌 이유 있는 망각이 필요하다.
최수경 사회에디터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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