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출신 20대 거장 피아니스트 박재홍의 ‘귀향’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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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10 08:11  |  발행일 2025-04-10
초등 때 데뷔 무대로 선 수성아트피아
‘4월 음악제’ 12개 공연 중 3개 기획
‘정지원 독주회’ ‘박재홍·박종해 듀오’
‘피아노 트리오&퀸텟’ 曲 세팅도 직접
음악으로 딴 세상 다녀오는 느낌 선사
수성아트피아 4월 음악제의 음악적 브레인으로 활약한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이번 공연을 기획하며 동료 음악가들과 호흡을 맞춘 과정을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놀이터를 만드는 기분으로 준비했다고 했다. <수성아트피아 제공>

수성아트피아 '4월 음악제'의 '음악적 브레인'으로 활약한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이번 공연을 기획하며 동료 음악가들과 호흡을 맞춘 과정을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놀이터'를 만드는 기분으로 준비했다"고 했다. <수성아트피아 제공>

세계 무대에서 '젊은 거장'으로 우뚝 선 피아니스트 박재홍(26)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눈빛만은 신이 나 있었다.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4월 음악제' 공연 중 '피아니스트 박종해와의 듀오 리사이틀'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대구를 찾은 박재홍과 마주했다. 2021년 세계적 권위의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으로 '부조니의 남자'라 불리는 그는 올해 수성아트피아 '4월 음악제'의 실질적인 '음악적 브레인'이자 마스코트로 활약했다. 4월 음악제의 총 12차례 공연 중 주요 3개 공연(정지원 독주회, 박재홍·박종해 듀오 리사이틀, 피아노 트리오&퀸텟)의 기획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그가 기꺼이 공연 기획을 맡아준 덕에 한정된 예산 속에서도 쟁쟁한 연주자들이 대거 동참했으며, 이에 지역 음악계와 관객들 사이에서는 "축제의 품격과 전문성을 한층 높였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 연주 일정이 매우 빠듯했을 텐데, 공연 기획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당연히 기꺼운 마음으로 수락했습니다. 무엇보다 대구는 제 고향이라 감회가 남다르거든요. 훌륭한 음악가들과 호흡을 맞추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른 세상에 다녀오는 기분이 듭니다. 개인적인 연주 일정 때문에 더 많은 공연을 기획하지 못한 점이 아쉬울 따름이죠. 사실 미국 애틀랜타 공연을 마치고 사흘 전 새벽에 귀국한 터라, 오늘 오전에도 링거를 맞고 왔을 만큼 강행군이었지만 마음만은 즐겁습니다."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생애 첫 무대였던 수성아트피아는 저에게 남다른 의미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라고 했다. <수성아트피아 제공>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생애 첫 무대였던 수성아트피아는 저에게 남다른 의미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라고 했다. <수성아트피아 제공>

▶대구예술영재원 출신으로서 수성아트피아는 특히 각별한 공간이라고 들었다.


"수성아트피아는 제가 처음 연주했던 공연장입니다. 전문 공연장 무대에 처음 선 곳이 초등학교 때 수성아트피아 소극장(2010년 수성아트피아의 예술영재 육성 프로그램 '오 페어' 콘서트)이었어요. 처음 연주해 본 대극장 역시 이곳이었죠. 저에게는 단순한 공연장 이상의 향수와 의미를 지닌 소중한 공간입니다."


▶독주부터 퀸텟까지 프로그램 구성에서 기획자의 세심한 고민이 느껴진다. 중점을 둔 부분은.


"제가 진심으로 아끼고 존경하는 아티스트들로 꾸렸습니다. 독주회를 하는 정지원 피아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탁월한 연주 실력은 물론 명석한 해석력까지 갖췄거든요. 준비된 음악가로 꼭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듀오 리사이틀을 하는 종해 형은 음악적 영감을 가장 많이 나누는 파트너로, 함께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납니다. 피아노 트리오&퀸텟 공연은 우리나라에서 실내악을 제일 많이 하고 잘하는 분들로 모셨어요. 특히 관객들에게 독주, 듀오, 실내악 등 클래식의 다양한 플랫폼을 선사하고자 프로그램의 다변화에 주력했습니다."


▶3개 공연의 연주 곡도 직접 선택했다고 들었다.


"제가 욕심이 좀 많아서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 작곡가도 겹치지 않게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사실 제가 실내악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좋은 음악가들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 너무 즐거워, 일이라기보다 하나의 '음악 놀이터'를 만드는 기분으로 준비했습니다."


▶꼭 한번 함께 무대에 오르고 싶은 연주자는.


"콕 집어 얘기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피아노 듀오를 같이 해보고 싶은 분은 스승이신 안드라스 쉬프입니다. 선생님과 꼭 한번 독일 음악을 같이 연주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작년 가을부터 세계적인 거장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를 사사하고 있다. 그와의 만남은 어떤 변화를 줬나.


"레슨 하나하나마다 약간 마법 같은 순간들인 것 같아요. 쉬프 선생님은 독일 음악에 있어서는 현존하는 최고 권위자라고 생각합니다. 레슨받을 때마다 툭툭 던지시는 말씀에 큰 울림이 있어요. '이 부분을 작게 쳐라. 크게 쳐라'라고 하시기보다 공감각적인 표현을 많이 하세요. 예를 들어 '새벽 4시에 숲에 혼자 나갔을 때 보게 된 이슬이 맺혀 있는 풀을 상상해 봐라' 같은 말씀으로 영감을 많이 주세요. 적어도 3~4년 정도는 배움을 이어갈 것 같아요."


▶대구 관객들의 수준이 높다는 평이 많다. 고향 무대에 서는 기분은 남다를 것 같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관객들의 감상 태도, 집중도, 몰입도가 전 세계 어디보다도 좋은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대구 관객들의 수준이 높다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저야 객관적일 수만은 없죠. 대구가 고향이고 또 치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대구에서 연주하는 건 늘 반갑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슬럼프가 찾아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나.


"'이때부터 저때까지 슬럼프였던 것 같다'는 없어요. 피아니스트는 워낙 쉬운 길이 아니고 정답도 없는 길이거든요. 피아니스트들이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작곡가들이 남겼던 편지, 악보, 사연 등인데 사실 행복하지만은 않은 내용들도 많아요. 그런 걸 연구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몰입이 돼 힘들어지거나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 그 슬럼프를 치유하고 극복하게 만드는 매개 역시 음악입니다. 늘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하고 그냥 살고 있습니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줬으면 하는 기대도 있다. 지역 음악계의 발전을 위한 생각이나 향후 활동 계획은.


"부모님은 청도에 계시고 대구는 이렇게 연주 있을 때나 오게 됩니다. 앞으로도 대구에서 공연을 기획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힘을 보태고 싶어요. 지역의 훌륭한 인프라와 재능 있는 후배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무대가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


박재홍은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음악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수성아트피아 제공>

박재홍은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음악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수성아트피아 제공>

▶지역의 클래식 꿈나무와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해 준다면.


"피아니스트라는 길은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끝까지 걸어가기 힘든 고독한 여정입니다. 어떨 때는 음악이 사람을 불러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흔히 재능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재능은 '음악을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느냐'입니다. 또한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도록 타인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와 자신의 음악을 유연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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