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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은 50대의, 호리호리한 몸매에 이슬람 특유의 하얀 옷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를 향해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여권이 그의 손 안에 있으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Emergency Office' 앞에 서더니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렸다.
잠시 후 그가 나왔다. 이번에는 바로 옆 기도실 앞으로 데리고 가더니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엉거주춤 앉지 않고 서 있으니까 '플리즈'를 쓰면서 잠시만 의자에 앉아 기다려달라고 했다. 기도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그는 정말 나를 앉혀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무용수처럼 몸을 날렵하게 엎드렸다 폈다 하면서 그는 기도에 몰입했다. 나의 마음은 이루말할 수 없이 불안하고 착잡했다.
기도가 끝났다. 그가 팔랑팔랑 내 여권을 들어 보이며 '폴리스!' 하고 경찰을 불렀다. 어디선가 경찰이 나타났다. 여권을 넘기더니 나보고 따라가라고 했다. 나는 놀라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마약 소지자도 아닌데 웬 경찰을? 무섭고 불안하여 걸음조차 제대로 떼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나를 처음의 눈 인식 기계 앞으로 데리고 갔다. 즈네들끼리 아랍말로 왈라솰라 하더니 다시 기계 앞에 나를 세웠다. 패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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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이 터졌지만 영어가 짧아서 입을 닫았다. 내가 정작 묻고 싶었던 사람은 기도하던 상관이었다. 추측컨대 그는 필시 'Emergency Office'에서 나의 여권을 조회했을 것이었다. 문제가 없었으면 바로 직원에게 인계해야 할 것 아닌가. 기도실 앞에 앉혀놓고 온갖 걱정으로 불안에 떨게 할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의 신은 그토록 이기적인 자신의 신도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단 말인가.
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있었다 해도 나의 영어 수준으로는 그와 논쟁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만한 용기도 내게는 없었다. 대신 공항 직원이 나의 표정을 읽은 것 같았다. 그는 양 어깨를 한껏 치켜올리며 복잡해진 나의 얼굴에 대고 사과를 했다.
"위, 쏘리! 유, 노프라블럼!"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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