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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윤 전 경북도립대 총장 |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국정 운영의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아쉽게 느낀 점은 바로 그 '섬세함'의 부재였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어퍼컷!”을 하며 공약을 밀어붙이던 그 기세대로의 국정 운영은 '약팽소선'의 철학과는 정반대였고 그 결과는 참담함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집권초기 발생한 '만 5세 초등학교 조기 취학' 정책이다. 초등학교 취학 전 아동의 보육 부담을 덜고, 사교육 문제를 완화하며, 유보통합 원칙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정책의 방향은 타당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서 몇 개월 차이가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고, 학부모들의 우려와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급하게 발표되었다. 결국 정책은 실행에 이르지도 못하고, 장관만 경질되는 사태로 귀결됐다. 이는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까지 흔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정운영은 대강(大綱)과 큰 줄기도 올바라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정책 하나하나가 국민에게 미치는 고려는 섬세해야 한다. 더구나 국가 정책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높아지고, 그에 상응하게 국민이 기대수준이 높아진 지금의 상황에서 국가 정책이 국민의 만족을 시키기는 어렵다.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중국 역사상 가장 현명한 군주로 꼽히는 당태종 이세민은 군주학의 모범이 된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말 위에서 천하를 얻기는 쉬워도, 그것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騎馬得天下易,居天下難).” 이 말은 전쟁과 권력 투쟁을 통해 정권을 잡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훨씬 더 고된 과제임을 뜻한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대통령으로 성공하기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과 상통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돌아보면, 대선에서 이기고 권력을 쥐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지만, 정작 대통령으로서의 준비와 철학, 국정 운영의 태도에 있어선 부족함을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을 장악한 이후, 그것을 어떻게 쓰고 절제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제 누구든 대통령이 된다면, '약팽소선'의 지혜를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국정은 전광석화처럼 내리치는 단호한 결정보다는, 불 조절을 하며 생선을 굽듯 정성과 인내로 다듬어야 할 과정이다. 정치는 민심과의 밀도 높은 조율이며, 정책은 국민의 삶에 닿아야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크고 예리한 칼이 아니라, 국정을 천천히, 그러나 정교하게 조율하는 섬세함이다. '약팽소선'이야말로 그 길을 비추는 오래된 지혜다.
안병윤 전 경북도립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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