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인공지능)가 만든 레고 도시 이미지. '레고 이야기'는 가부장적인 면이 강했던 레고가 21세기 들어 다양성을 강화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게티이미지뱅크>

'레고 이야기'는 레고가 현대의 놀이 문화를 혁신한 전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서 성장하기까지의 기록이다.
레고 이야기(작은 장난감은 어떻게 전 세계를 사로잡았나)/옌스 아네르센 지음/서종민 옮김/민음사/436쪽/2만4천원
지난 3월11일, 레고 그룹이 2024년도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13% 증가한 743억 크로네(약 15조7천억 원)를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10% 증가한 187억 크로네(약 3조9천억 원)에 달했다. '코로나19 특수' 종료 후 도래한 세계 장난감 업계의 불황 속에서 달성한 사상 최대 실적이다.
이 놀라운 성과는 20여년 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더욱 돋보인다. 2000년대 초 레고는 심각한 매출 감소와 적자에 직면해 있었다. 레고의 주인이 바뀔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레고의 소유주 키엘은 그룹의 매각을 완강히 거부했지만, 2005년 그룹 산하의 놀이공원인 레고랜드의 지분 70%를 팔 수밖에 없었다.
2004년 10월, 예르겐 비 크누스토르프가 신임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3세대에 걸친 오너 경영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새 CEO의 나이가 35세라는 점도 화제였다. 파격적 발탁이었다. 레고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구호 하에 수익성이 없는 무분별한 혁신과 다각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블록으로 돌아갔다. 마침내 레고가 부활했다. 12년 연속 매출 증가라는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써냈고, 2019년에는 레고랜드도 다시 품에 안았다.
레고가 위기를 맞이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1978년 브릭의 특허가 만료됐을 때, 1980년대에 닌텐도를 선두로 한 비디오게임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고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디지털 영상 시장이 확장됐을 때 레고는 항상 우려의 눈길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레고는 브랜드의 본질적 가치를 잃지 않았다. 창립 100주년을 앞둔 이 오래된 기업은 살아남았고, 더욱 강해졌다.
'레고 이야기'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이 책이 레고가 지닌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레고의 창업자 올레 키르크는 품질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드러진 인물이었다. 올레 키르크가 근본적으로 기술자에 가까웠다면, 그의 셋째 아들 고트프레드는 탁월한 비즈니스맨이었고 레고의 미래가 플라스틱 브릭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 결과 1958년, 고트프레드의 주도 하에 드디어 우리가 아는 현대적 레고 브릭이 탄생했다.
특히 레고는 지역 기업으로서 덴마크 윌란 반도에 자리한 마을인 빌룬(Billund)과 함께 성장했다. 1916년 올레 키르크가 빌룬의 목공소를 사들였을 때, 이 작은 시골 마을의 인구는 채 100명도 되지 않았다. 1942년에 화재로 공장이 전소된 뒤에도 레고는 빌룬을 떠나지 않았다. 1964년에는 빌룬 공항이 문을 열었고, 1968년에는 최초의 레고랜드가 빌룬에 세워졌다.
이 책에서는 가부장적인 면이 강했던 레고가 21세기에 들어 다양성을 강화하며 변화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2017년에는 비(非)덴마크인이 처음으로 최고경영자가 되었고, 최고위 임원 스물다섯 명의 명단에 여성 세 명이 이름을 올렸다. '레고 이야기'는 레고가 현대의 놀이문화를 혁신한 전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서 성장하기까지의 기록이다. 동시에 "좋은 브랜드는 어떻게 위대한 브랜드로 발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레고가 파는 것은 단순한 블록이 아니라 그들만의 독보적인 가치와 전략이다. 레고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팬뿐만 아니라 혁신을 꿈꾸고 인사이트를 원하는 비즈니스맨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 옌스 아네르센(Jens Andersen)은 1955년 덴마크 글로스트루프 출생의 유명 전기작가다. 1년 반에 걸친 연구와 인터뷰를 통해 '레고 이야기'의 집필을 완성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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