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그레-해태아이스크림 M&A 개요.<중기부 제공>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말. 원재료 가격 상승과 내수시장 한계 등으로 성장 정체 국면에 빠진 국내 빙과업계를 뒤흔드는 빅이벤트가 발생했다. 당시 빙과시장 점유율 2위 빙그레가 4위 업체인 해태제과의 아이스크림 사업을 품으면서 1위 업체인 롯데제과를 추월하게 됐기 때문이다.
◆절묘하게 매치된 두 회사의 M&A 필요성
<주>빙그레는 '투게더', '메로나' 등 아이스크림, '바나나맛우유' 등 유음료 브랜드, 스낵 브랜드 '꽃게랑' 등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식음료품을 판매하고 있다. 누구나 알만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췄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식품업계 절대강자였던 '롯데家'에 막혀 만년 2위라는 부적정 평가도 상존하는 상황이었다.
해태제과의 상황은 더 비관적이었다. 해태제과식품은 2015년 '허니버터칩' 히트 이후 히트작 부재로 고전했다. 2016년 하반기부터 신제품 매출 감소와 고정비 부담, 유통 교섭력 저하 등이 맞물리며 전반적으로 실적 부진이 이어졌다. 특히 냉동식품의 경우 CJ제일제당에 냉동만두 시장을 빼앗긴 이후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었다.

빙그레-해태아이스크림 M&A 주요 진행과정.<중기부 제공>
이에 따라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출액이 7천604억원, 7천254억원, 6천900억원이었다. 순이익 역시 75억원, 24억원, -347억원으로 내리막이었다. 반면 순차입금 2천757억원, 2천844억 원, 2천894억원으로 늘어났다.
해태제과식품은 수 년간 실적 개선이 더딘 빙과사업의 지분 매각대금으로 차입금 상환 및 제과, 식품 사업부의 재도약 기회를 노렸다. 이를 위해 2020년 1월 해태제과식품으로부터 물적분할을 통해 해태아이스크림을 설립했다.
업계에서는 해태제과식품의 물적분할을 두고 매각을 위한 수순으로 분석했다. 적자사업부를 분할을 통해 떼어내 존속 회사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매각대금으로 존속 회사의 차입금을 상환하려는 계획임을 점친 것이다.
이에 빙그레는 국내 빙과시장에서 동종 라이벌인 해태아이스크림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며 아이스크림 사업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M&A를 진행했다. 통상 경쟁사 간 M&A를 진행하면 공정거래법 관련 법규 위반 우려가 있어 충분한 정보의 제공이 어려운 점에 더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진행 과정은 다소 지연됐다.

사업부 매각안 비교.<중기부 제공>
◆분할 후 주식 매각 vs 영업 양수도
일반적으로 사업부를 매각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해태아이스크림처럼 물적분할 후 신설 법인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과 기존 법인의 형태는 그대로 두되 사업부만을 양도하는 '영업 양수도' 방법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분할 후 지분 매각형태를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거래완결성에 있다.
물적분할 후 지분 매각이든 중요한 영업 양수도든 모두 주주총회 특별 결의를 요한다. 다만 시점의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물적분할 시에 주총 특별 결의를 요하고, 후자는 영업 양수도를 결정하였을 때 실시해야 한다.
물적분할 시에 결의를 받게 되면 이후 주식매매계약 체결 시에는 주총 특별결의를 요하지 않으므로 거래종결에의 장애 요소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업양수도의 경우에는 M&A 관련 협상이 모두 진행된 후더라도 특별결의를 받지 못하게 되면 거래를 종결짓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주주 수가 많은 상장회사의 경우 사업부 매각 방식은 중요하게 고려되는 부분이다. 추가로 주식매수청구권의 인정 여부도 물적분할 후 지분 매각 방식에 유리하게 작용하는데, 주식매수청구권이 인정되는 영업양수도의 경우 반대의사를 갖는 소액주주 지분 매입비용이 추가로 발생될 수 있다.
이처럼 해태제과식품 또한 거래의 완결성 확보와 주식매수청구권 관련 소요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물적분할 후 지분 매각 방식을 채택했다.

해태제과 차입금 현황.<중기부 제공>

해태제과 경영실적 추이.<중기부 제공>
◆'인수가 1천400억원' 가치 산출 배경은
신용평가사들은 해태제과식품 아이스크림 사업부가 3년 연속 10억~30억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했다. 재무 실적 탓에 기존에 투자를 검토했던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선뜻 지분 매입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빙그레는 어떻게 해태아이스크림의 가치를 1천400억 원으로 평가했을까.
그것은 바로 생산과 유통망의 시너지 효과에서 해답을 찾았다.
빙과류 제품의 경우 이른바 콜드체인으로 불리는 저온유통체계가 필수인 만큼 운송비 등 물류비 비율이 높은 편이다. 빙그레 생산공장은 남양주와 김해에 위치해 전국 단위 납품에 소요되는 물류비가 상당했다.
빙그레는 이런 문제를 해태아이스크림 인수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해태아이스크림의 전라도 광주와 대구 생산공장을 통해 전국 단위 통합 물류를 구축해 물류비를 절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단순한 비용절감 뿐만 아니라 영업 분야에서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통상 아이스크림 영업은 소매점과 독점계약 형태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A슈퍼마켓 아이스크림 코너에 해태아이스크림 냉동고만 들어간다는 뜻인데, M&A를 통해 그간 경쟁사의 독점 거래처였던 영업점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기존 빙그레의 해외판매망도 매력적이다. 상대적으로 해외 진출에 소극적이었던 해태아이스크림에게 시장 개척비에 대한 큰 부담 없이 활발한 해외 진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회비용을 고려한 끝에 빙그레는 해태아이스크림의 지분가치를 1천225억원에서 1천665억원 사이로 책정했다. 결국 가격 조정을 거쳐 1천325억원에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영업익 1천억 시대 활짝' 본격화되는 M&A 시너지
1년여 간 진행된 빙그레와 해태아이스크림 간의 M&A 과정에서 원매자 물색부터 기업 결합 심사 등 어려움이 산적했지만 동종업 경쟁자이기에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 밸류' 덕분에 성공했다는 것이 시장의 분석이다.
최근 재무 실적과 시장 상황 등에도 불구하고 정상화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동종업 경쟁자인 빙그레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실제로 빙그레의 해태아이스크림 인수 효과는 장기적이지만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인수 초기 만성 적자에 빠진 상태였던 데다 2년 넘게 영업망과 물류 체계를 통합하지 못해 마케팅과 인건비 등 비용부담이 늘면서 빙그레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줬다.
그러다 2022년 해태아이스크림은 연간 56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로 돌아섰고, 두 회사가 통합 구매 등 효율화 과정을 거치면서 2022년 하반기부터 인수 효과를 본격화했다.
빙그레의 2024년 영업이익은 1천313억원으로 집계됐다. 1967년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던 2023년의 1천123억 원을 1년 만에 다시 경신한 것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영업망 및 물류 체계 통합과 마케팅 및 인건비 비용 등의 이유로 400억 원을 밑돌았던 영업이익이 이제는 1천억 원대에 안착한 모습이다.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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