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지법. 영남일보 DB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2023년 9월 출소한 A(27)씨. 거주지가 대구인 A씨는 그해 12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 대화방을 통해 20대 여성 B씨를 알게 됐다. B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전매특허인 '거짓말'을 또 했다. 자신이 유럽에서 10년간 산 영국 국적의 재외국민이고, 유명 호텔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현란한 혀놀림'으로 목돈챙길 궁리를 한 것.
A씨는 B씨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점을 악용해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에 들어갔다. 교제를 빙자해 매번 '외부에 노출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족들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통화를 하지 마라' '외출시 마스크, 모자를 착용해 노출을 없애고 항상 같은 옷을 입어라'고 지시했다.
이후 A씨는 '사기극'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었다. B씨에게 '한국 국적 취득' '해외 업무 경비' '캄보디아 재판' '이중국적자 사건 무마 비용'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지난해 9월30일까지 총 38차례에 걸쳐 4억7천138원을 뜯어냈다.
B씨의 부모에게까지 마수를 뻗쳤다. B씨 부모가 상당한 자산가인 사실을 확인하면서다. A씨는 B씨에게 "(부모에게)돈이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해서 돈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B씨는 부모에게 금융 사건에 휘말렸다며 변호사 선임비·공탁금·사채 변제 및 처리 비용·증거금 등의 명목으로 총 96억3천270만원을 받아낸 뒤 고스란히 A씨에게 전달했다.
A씨는 가로챈 100억원을 은닉하기 위해 자금 추적이 어려운 '상품권 깡'을 계획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117회에 걸쳐 70억4천988만원을 상품권으로 바꿔 은닉했다. 이후 상품권 일부를 매도해 현금 32억원을 챙겼다.
A씨의 사기행각은 지난 3월22일 경찰에 긴급체포되면서 막을 내렸다. A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16일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영철)는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전후 정황을 보면 이 사건 각 범행은 매우 치밀하고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 피해자들이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으며, 피고인은 향후에도 사기 범행을 반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A씨의 범죄 수익금 은닉을 도운 혐의로 기소된 공범 C(30)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동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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