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국토 도보 종주 중인 '왼발박사' 이범식(앞줄 가운데) 영남이공대 교수가 18일 대구 달성군청사에 들어서고 있다.<달성군 제공>

정은주 달성군부군수(왼쪽)가 18일 대구 달성군청 로비에서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국토 도보 종주에 나선 '왼발박사' 이범식 영남이공대 교수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달성군 제공>

'왼발박사' 이범식(오른쪽 셋째) 영남이공대 교수가 18일 대구 달성군청에서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국토 도보 종주 중 군청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달성군 제공>
지난 18일 오전 11시 대구 달성군 논공읍에 있는 달성군청 앞 인도. 주황색 조끼를 입은 한 남자가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뚝이며 묵묵히 걸어왔다. 경주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국토 도보 종주 중인 '왼발박사' 이범식(60) 영남이공대 교수다. 경북 고령군에서 오는 길이었다. 양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은 중증장애인이지만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없었다. 결연한 의지만 가득해 보였다.
도착 지점엔 군청 직원이 와 있었다. 맨 앞엔 정은주 달성군 부군수가 두 손을 모은 채 기다렸다. 이 교수가 가까워지자, 정 부군수는 환하게 웃었다.
"교수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뜨겁게 포옹했다. 이 교수의 발걸음과 그것을 기다려온 이들의 마음이 하나로 포개진 듯 했다.
이 교수는 "사실, 오늘 비가 쏟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게 저한테는 더 익숙해서다. 그런데 이렇게 날이 맑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 부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며칠째 장대비가 쏟아졌는데, 하필 오늘은 또 비가 하나도 안왔다"며 "교수님이 오시니까 날씨까지 도와주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이 교수 가방에서 하늘색 표지의 책 한 권을 꺼냈다. 책 이름은 '꺾이지 않는 마음(왼발박사 이범식의 서울-경산 국토 도보 종주기'이다. 교수는 군청 바닥에 조심스레 앉더니 왼발가락으로 펜을 잡았다.
주변에 모여 선 이들이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또박또박 글씨를 써 내려갔다. "건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짧은 문장이었다. 교수는 그 책을 정 부군수에게 건넸다. 'APEC 성공 기원' 문구가 적힌 홍보용 목걸이도 함께 선물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이 여정은 저 혼자만의 길이 아니다"며 "응원하고 격려해주셔 너무 감사드린다"고 했다.
간단한 기념촬영이 이어졌다. 교수가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 뒤에는 매일 20㎞씩 걸어온 땀과 의지가 배어 있었다. 광주 무등산 정상에서 출발한 이번 종주는 다음달(8월) 1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 도착하면 모두 마무리된다. APEC 성공적 개최를 넘어 '국민 통합'이라는 더 큰 목표를 품고 있다.
이범식 교수는 "APEC이 단순한 외교행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내부의 단절과 불균형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 뒤, 다시 대구시청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대구를 횡단한 뒤 경산, 영천 등으로 향한다.

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