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윤 국립경국대 부총장
이 지면을 통해 오늘과 다른 내일을 위한 글을 쓴지 반년이 지났다. 무안공항 사고가 드러낸 균형발전의 허상, 윤석열 비상계엄의 헌정 위기, 분권형 개헌, 약팽소선(若烹小鮮)'의 국정운영, 그리고 '영남인의 시대정신'까지 필자가 갖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모두가 '오늘과 다른,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충정이었다.
필자는 국가공무원으로 30년을 재직하며 지방자치, 균형발전, 주민복지라는 과제를 중심에 두고 살아왔다. '지방의 발전과 주민의 행복'이라는 커다란 화두를 붙들고 바쁘게 살아온 시간이었다. 지난해 여름, 부산광역시 행정부시장 직을 마친 뒤 고향 예천으로 돌아와 경북도립대학교 총장으로서 본격적인 '지방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방에 몸을 두고 살아가면서도, 내 사고방식은 여전히 중앙정부 공무원의 틀 안에 머물러 있음을 자주 깨닫는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누구보다 강조해 왔지만, 정작 그동안 내가 가진 시선은 늘 서울을 중심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중앙정부의 논리로 지역을 판단하고, 지역의 문제를 위로부터의 구조 개혁이나 제도 개선으로만 풀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역에 발을 붙이고, 기고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나의 관점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변화는 거대한 담론이나 법제도 개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생활 현장에서의 작지만 끈질긴 실천에서 비롯된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힘은 바로 그 현장에 있다.
이 깨달음은 단순히 '중앙보다 지방'이라는 구호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선의 전환, 관점의 이동이다. 위를 보는 대신 옆을 보고, 멀리 있는 권위나 제도보다 내 곁의 이웃과 공동의 문제에 눈을 맞추는 것. 주민들과 함께 문제를 보고, 느끼고, 분석하고, 해결하고, 또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 바로 이 '풀뿌리 실천'이 지역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들고, 삶을 바꾸는 진짜 지름길이다.
풀뿌리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멀리 있는 권력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삶과 눈높이에서 출발한 변화가 진정한 지역혁신의 동력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제도와 법률, 중앙정부와 국회라는 형식적 틀에 의존해왔다. 지방자치와 분권 개헌, 균형발전을 수없이 외쳐왔지만, 현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가 변화를 '요청'만 했지,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에 기대가 크지만, 중앙의 결정은 여전히 일방적으로 내려오고, 지역은 자율적 결정권을 갖지 못한 채 눈치만 본다. 통합신공항 이전을 비롯한 지역의 현안은 구호만 요란할 뿐 실질적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정치는 지역 미래보다 표 계산에 골몰한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
나의 대학 모교 교정에는 "내일은 오늘과 다르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나아지려는 다짐'이다.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바뀌겠지만, 그 변화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일 가능성은 없다. 목표 없이 움직이는 변화는 오히려 삶을 악화시킬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변화를 우리가 직접 만드는 용기와 실천'이다. 옆에 있는 이웃과 함께 걷고, 현장을 붙들고, 삶을 바꾸는 작은 행동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내일을 여는 첫걸음이다. 지역을 바꾸는 건 누군가가 해줄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내일은 결코 오늘과 다르지 않다.
안병윤 국립경국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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