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근 '이코마터널'.<사진기록연구소 제공>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 아래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삶과 그 흔적을 담아낸 특별한 사진전이 대구에서 열려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사진기록연구소는 오는 24일까지 대구 남구 대명동 계명대 극재미술관 블랙홀에서 광복 80주년 기획전 '잊혀진 이름 남겨진 자리-조선인 강제동원의 기록'展(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연구소 장용근 소장을 비롯한 박민우, 박창모, 우동윤, 최덕순 작가가 지난 10개월간 일본 전역 7천㎞를 누비며 기록한 강제동원 현장 60여 곳의 사진을 공개한다.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발굴하는데 중점을 뒀다는 점이다. 장용근 소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함도나 사도광산처럼 규모가 큰 시설만 알지만, 작은 댐, 철도, 터널 등 일본 근대화의 밑바탕이 된 수많은 곳에도 강제동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최덕순 '슈마리나이호 우류 제1댐'.<사진기록연구소 제공>
◆'뼈로 쌓은 댐'의 진실과 철도와 터널에 숨겨진 조선인의 희생
전시는 에필로그를 포함 총 9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섹션마다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특히 댐 관련 사진들이 품은 이야기는 큰 충격을 전한다. 당시 위험한 작업을 전담한 조선인 노동자들이 떨어져 사망하면, 일본인 관리자들이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않았으며, 일부의 경우 시신 위에 시멘트를 부어버렸다는 충격적 증언이 전해진다. 이처럼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의 산업시설 곳곳에서 희생됐고, 이러한 비극은 태평양전쟁 시기뿐만 아니라 1900년대 초부터 광범위하게 자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전시는 철도와 터널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깊이 다룬다. 난공사 구간이 많았던 철도 건설 현장에서는 '침목 하나에 조선인 한 명의 목숨이 희생됐다'고 할 정도로 참혹한 증언만이 남아 있다. 철도와 터널은 일본의 근대화와 군사 물자 수송의 핵심 시설이었고, 그 배경에는 조선인들의 피와 땀, 희생이 깔려 있었다. 작가들은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이어지는 부관연락선부터 시작해 일본 전역으로 뻗어나간 철도 노선과 터널 곳곳에 남은 흔적을 추적하며, 당시 조선인들이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가 열악한 노동 환경에 내몰렸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특히 난공사로 악명이 높았던 이코마 터널 건설에 참여했던 조선인들의 희생이 너무 커 각종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터널을 뚫었던 일본 회사는 조선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우기도 했다. 이 터널이 있는 마을의 절들은 조선인들이 작은 절들을 많이 지었기에 '조선사(朝鮮寺)'로 불린다. 이코마 터널은 현재 일본 3대 심령 스팟 중 하나로 불리며, 터널을 뚫었던 난공사와 많은 희생자들의 원혼이 얽혀 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잊혀진 이름 남겨진 자리-조선인 강제동원의 기록'展 전시 전경.<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잊혀진 이름 남겨진 자리-조선인 강제동원의 기록'展 전시 전경.<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잊혀진 이름 남겨진 자리-조선인 강제동원의 기록'展 전시 전경.<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전쟁의 광기 속에 희생된 이름과 매국(賣國)의 흔적
전시는 태평양전쟁의 광기 속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들도 조명한다. 전쟁물자를 보관하기 위해 일본 곳곳에 건설된 방공호와 지하시설들에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동원됐다. 특히 오키나와에는 '한의 비'라는 한국인 위령탑이 세워져 있는데, 미군 상륙작전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전쟁의 참혹한 희생양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에 대한 일본의 '피해자 의식' 뒤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도 함께 다룬다. 원폭 피해를 기리는 일본의 역사교육 현장에는 종종 조선인 희생자의 존재는 지워져 있거나 주변적인 존재로 다뤄지며, 이는 일본이 과거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더불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송병준이 일제에 의해 하사받았다는 홋카이도의 농장 전경을 통해 조국을 배신한 댓가로 부를 일궜던 매국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장용근 사진기록연구소장이 '잊혀진 이름 남겨진 자리-조선인 강제동원의 기록'展에 참여한 작가들의 일본 방문지 기록 지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미래를 향한 메시지…'기억'과 '계승'의 중요성
이번 전시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한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용근 사진기록연구소장은 "우리는 아직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며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기록연구소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중앙아시아와 미주 지역에 흩어진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을 기록하는 후속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포괄하는 큰 그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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