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패션쇼, 메시지의 예술과 신상의 첫 발걸음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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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5 06:00  |  발행일 2025-08-14
영국의 디자이너 루시 더프 고든은 패션쇼에 음악, 조명, 무대연출, 테마를 도입해 현대 패션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20세기 초 루실의 패션쇼. <출처: nenasnotes>

영국의 디자이너 루시 더프 고든은 패션쇼에 음악, 조명, 무대연출, 테마를 도입해 현대 패션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20세기 초 루실의 패션쇼. <출처: nenasnotes>

매년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패션쇼 무대에는 종종 일상과는 거리가 먼 과장된 옷들이 등장한다. 패션쇼는 19세기 중반 파리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신상품을 모델들에게 입혀서 보여주는 형식에서 시작됐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영국 출신 디자이너 찰스 프레드릭 워스(Charles Frederic Worth)가 고급 맞춤복을 유럽 상류사회 고객들에게 선보인 오트 쿠튀르(Haute-Coutrue) 쇼가 주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음악, 조명, 무대연출, 테마를 도입해 현대 패션쇼의 선구자로 평가가는 인물은 영국의 디자이너 루시 더프 고든(Lucy Duff-Gordon)이었다. 그녀는 뮤지컬 의상을 담당해본 경험으로 패션쇼를 하나의 공연예술로 끌어올렸고, 최초의 전문 모델 양성을 하는 등 현대 패션쇼 형식을 창조했다. 이후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디자이너들이 오트 쿠튀르와 별개로 고급 기성복 라인(프레타 포르테, Prêt-à-porter)을 출시하여 패션쇼의 대상은 일반 소비자로 확대됐다.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의 패션쇼. 여성의 부드럽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뉴룩(New look)을 발표했다. <출처: vogue>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의 패션쇼. 여성의 부드럽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뉴룩(New look)을 발표했다. <출처: vogue>

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은 프랑스 파리 몽테뉴에 위치한 디올 하우스의 살롱에서 고객과 기자들을 초청해 첫 컬렉션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여성의 부드럽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뉴룩(New look)을 발표했다. 이는 1920~1930년대의 직선적 실루엣을 부정한 것이다. 전쟁동안 원단 부족으로 단순하고 실루엣의 옷이 유행했기에 풍성한 주름의 스커트는 당시 언론에 큰 주목을 받았다.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보그(Vogue), 르 피가로(Figaro) 등 많은 언론 매체는 그의 패션쇼에 대해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미래의 패션을 선보인 것으로 극찬했고, 여성복 패션에 새로운 유행이 시작됐다.


디올의 1947년 패션쇼는 단순한 컬렉션 발표가 아니라 그가 희망하는 새로운 시대를 선언한 것이었다. 물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삶의 방식을 바꾼 패션 혁명을 주도한 샤넬의 관점에서는 디올의 뉴룩은 '덮개 같은, 오래된 안락의자 같은, 불편함과 과장된 구조성, 여성을 제대로 이해해본 적 없는 디자인'이었지만, 디자이너가 자신이 생각하는 철학과 가치, 미학을 발표하고 대중들의 공감을 이끈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늘날 패션쇼는 디자이너의 정체성, 브랜드의 세계관, 사회적 메시지, 문화적 정서를 통합하는 총체적 예술형식이 됐다. 입기 어려운 옷이나 착용 의도가 없는 조형적 옷도 쇼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옷, 그 이상'의 상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패션쇼 중 패션쇼의 실험성과 매장의 실용성을 뚜렷하게 분리하는 대표적인 디자이너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과 톰 브라운(Thom Browne)을 예로 들 수 있다.


1999년 알렉산더 맥퀸의 패션쇼. 철학적 주제를 패션쇼라는 형색 안에서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출처: blog.metmuseum.org>

1999년 알렉산더 맥퀸의 패션쇼. 철학적 주제를 패션쇼라는 형색 안에서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출처: blog.metmuseum.org>

알렉산더 맥퀸의 패션쇼는 고통, 죽음, 권력, 자연, 정체성과 같은 철학적 주제를 패션쇼라는 형색 안에서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그가 창작한 옷은 때로는 입기 어려운 조형물에 가까웠지만 사회적·철학적 메시지 전달하고 패션의 범주를 확장해 관객과 언론의 기억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창조했다. 그의 1999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회전하는 원형 플랫폼 위에 서 있는 모델에 산업용 로봇이 다가와 그 옷에 검은 물감을 뿌렸다. 이는 인간과 기계, 창조와 파괴, 여성과 권력 사이의 충돌을 시각화한 것으로 그의 '옷'을 보기 위해 참석한 관객들은 충격과 감동의 장면을 기억하게 됐다.


실험성이 강한 패션쇼를 이끄는 또 한 명의 대표적 디자이너로 톰 브라운을 들 수 있다. 그는 연극과 패션의 결합, 성별 이분법에 대한 도전, 집단성과 정체성의 교차를 주제로 철학적 메시지는 전한다. 그의 2023 가을·겨울 컬렉션은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영감을 얻어 우주적 감수성과 순수함을 옷으로 풀어냈다. 모래로 덮인 바닥에 추락한 비행기,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우주공간을 창조하여 연극적 퍼포먼스처럼 진행돼 이야기와 감정적 체험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매장의 옷은 굉장히 단순하고 절제된 옷으로 쇼의 옷과 매우 다르다. 쇼에서는 철학을 연출하고 매장에서는 그 철학을 현실에 적용하여 번역한 것이다.


반면,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성공적인 브랜드인 프라다의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는 '과장된 전시용 옷보다는 지적이고 현실적인 옷'을 디자인 철학으로 삼는다. 패션쇼는 곧 신제품의 무대이며, 소비자에게 패션쇼 런웨이에서 본 것이 곧 내 옷장에 들어올 수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다. 또한 브랜드의 디자인 방향을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변화된 브랜드 중 하나인 루이비통도 패션쇼 제품을 실제 판매 무대로 설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디자이너는 실용성과 브랜드 정체성을 함께 나타내며 상업성과 패션성의 균형을 잡고 있다.


2023년 톰 브라운 패션쇼. 옷을 매개로 무대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출처: flaunt>

2023년 톰 브라운 패션쇼. 옷을 매개로 무대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출처: flaunt>

패션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예술적 선언으로서 옷을 매개로 시대와 사회, 철학을 이야기하는 무대이기도 하고, 다른 측면에서는 상업적 출발점으로서 새로운 시즌의 상품을 세상에 처음 내놓는 무대이다. 톰 브라운과 맥퀸은 무대에서 질문을 던지고, 프라다와 루이 비통은 무대에서 곧장 쇼핑백으로 연결한다. 패션쇼의 진정한 가치는 옷을 '입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무대에서 옷이 전하는 이야기와 그것을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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