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구미 금오서원] 야은 길재 모신 곳, 금오산·낙동강이 평화로운 꿈처럼…

  • 류혜숙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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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23 19:35  |  발행일 2025-10-23
금오서원의 문루인 읍청루.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으로 남산자락의 경사진 자리에 우뚝 서 있어 위용이 대단하다.

금오서원의 문루인 읍청루.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으로 남산자락의 경사진 자리에 우뚝 서 있어 위용이 대단하다.

선산(善山) 동쪽에 큰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남쪽에는 작은 감천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크고 작은 두 물길이 만나는 자리에 남산(藍山)이 소박한 절벽을 떨구며 뚝 서있다. 선 채로 동그랗게 감싸 안은 마을이 원1리 서원마을이고, 마을 가장 안쪽 높고 밝고 경사진 자리에 금오서원이 들어서 있다. 서원 옆 관리사에서 한 어르신이 나와 석축 높은 서원의 협문으로 향하신다. 지팡이 짚고 천천히 경내를 돌아보는 걸음이 아침 문안을 드리는 듯하다.


◆ 금오서원


금오서원과 부속 건물군 사이에 관리동이 위치한다. 금오서원보존회가 들어와 있고 문화해설을 신청할 수 있다.

금오서원과 부속 건물군 사이에 관리동이 위치한다. 금오서원보존회가 들어와 있고 문화해설을 신청할 수 있다.

금오서원의 강당인 정학당. 대원군 시기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낸다.

금오서원의 강당인 정학당. 대원군 시기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낸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던 때, 고려에 대한 충을 의로써 행한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를 '여말삼은(麗末三隱)'이라 한다. 이분들 중 야은 길재 선생은 고려의 패운이 하늘과 땅에 떠돌 무렵 이미 은거에 들었다. 선생이 개경을 떠나 자리 잡은 곳은 고향인 구미 선산, 그때가 1389년이다. 선생은 늙으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핑계로 낙향했다. 그의 무상감과 망국의 한이 회고가(懷古歌)로 전한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조선이 서고, 그 새로운 나라는 선생을 원했지만 나가지 않았다. 오직 사방에서 모여든 학자들과 경전을 토론했고 양반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후학을 길렀다. 그렇게 살다 선생은 1419년 세상을 떠났다. 생전 선생의 생활은 백이와 숙제의 그것만큼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시간이 흘러 인종 원년에 선생을 기리기 위한 서원 건립이 주창되었다. 그리고 선조 5년인 1572년 금오산 자락에 서원을 창건해 위패를 모셨으며 3년 뒤 '금오'라고 사액되었다. 금오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지역 의병들의 근거지로 군량미를 저장하거나 은신처로 이용하는 등 사령부 역할을 하면서 화를 입었다고 한다. 이후 선조 35년인 1602년에 선산도호부사 김용(金涌)이 이곳 선산읍 남산 아래 터를 얻어 금오서원을 이전 중창하고 점필재 김종직, 신당 정붕, 송당 박영, 여헌 장현광을 추가 배향했다. 금오서원은 대원군 시기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낸다.


정학당에서 바라본 읍청루와 동재, 서재. 누마루 판문을 열면 들판과 물길의 풍광이 장쾌했을 것이다.

정학당에서 바라본 읍청루와 동재, 서재. 누마루 판문을 열면 들판과 물길의 풍광이 장쾌했을 것이다.

금오서원의 일곱 가지 계율을 새긴 편액. 이 칠금을 범한 자 이미 왔으면 되돌아가고 아직 오지 않았으면 아예 오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금오서원의 일곱 가지 계율을 새긴 편액. '이 칠금을 범한 자 이미 왔으면 되돌아가고 아직 오지 않았으면 아예 오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금오서원은 문루인 읍청루(揖淸樓)와 강당인 정학당(正學堂), 사당인 상현묘(尙賢廟)가 위계에 맞춰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이 중 정학당과 상현묘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먼지 한 톨 없는 강당에는 지난 봄 향사의 집사분정기가 아직 단정히 걸려 있다. 상인방에 빼곡히 걸린 여러 편액 가운데 '7조(七條)' 편액이 눈에 띈다. 금오서원의 일곱 가지 계율을 새긴 것이다. '떼 지어 무례한 짓 하지 말 것' '대화는 조용하고 음담패설하지 말 것'…. 그리고 '이 칠금을 범한 자 이미 왔으면 되돌아가고 아직 오지 않았으면 아예 오지 말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괜스레 옥죄이는 서슬 퍼런 엄중함이다. 정학당 양 옆에 종이 매와 처마에 종종 매달린 은빛 CD들이 퍼덕퍼덕 반짝반짝 무언가를 내친다.


◆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


금오정에 오르면 앞이 탁 트인다. 아득한 남쪽에 금오산 영봉이 솟아 있다. 감천과 낙동강이 하얗게 반짝거리고 노랗게 물든 고아와 해평의 들이 넓게 펼쳐진다.

금오정에 오르면 앞이 탁 트인다. 아득한 남쪽에 금오산 영봉이 솟아 있다. 감천과 낙동강이 하얗게 반짝거리고 노랗게 물든 고아와 해평의 들이 넓게 펼쳐진다.

강당인 정학당 뒤편에 사당인 상현묘가 자리한다. 야은, 점필재, 신당, 송당, 여헌 등 5현을 배향하고 있다.

강당인 정학당 뒤편에 사당인 상현묘가 자리한다. 야은, 점필재, 신당, 송당, 여헌 등 5현을 배향하고 있다.

금오서원은 문루인 읍청루, 강당인 정학당, 사당인 상현묘가 위계에 맞춰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금오서원은 문루인 읍청루, 강당인 정학당, 사당인 상현묘가 위계에 맞춰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서원 동쪽에 남산실, 청아재, 금오정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2017년에 지어진 향교의 부속 건물들이다.

서원 동쪽에 남산실, 청아재, 금오정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2017년에 지어진 향교의 부속 건물들이다.

관리사를 사이에 두고 서원 동쪽에 남산실(藍山室), 청아재(菁莪齋), 금오정(金烏亭)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2017년에 지어진 향교의 부속 건물들이다. 금오정에 오르면 앞이 탁 트인다. 아득한 남쪽에 금오산 영봉이 솟아 있다. 감천과 낙동강이 하얗게 반짝거리고 노랗게 물든 고아와 해평의 들이 넓게 펼쳐진다. 길재의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태어난 곳은 고아읍 봉한리다. 길재는 금오산과 남산 사이 옥토에서 태어났고, 그의 학문은 물길처럼 또는 물길 따라 이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16세기 중반 이후 확립된 조선 성리학의 도통은 흔히 정몽주, 길재, 강호 김숙자, 점필재 김종직, 한훤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이언적, 이황으로 연결된다. 점필재의 문하에 한훤당, 탁영 김일손, 동계 권달수, 남계 표연말, 일두 정여창, 매계 조위, 이성 노종선 등이 있고, 한훤당의 문하에 영남사림파인 신당 정붕, 송당 박영, 기호사림파인 정암 조광조, 충암 김정 등이 있으며, 송당의 문하에는 진락당 김취성, 구암 김취문, 용암 박운, 송암 노수함 등이 있고, 송암의 문하에 여헌 장현광이 영남학파의 유종으로 자리하고 있다. 조선을 거부한 고려인 길재의 후학들이 훗날 조선 사대부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해간 것이다. 선산에서 조선 개국 후 문과에 합격한 인원만 36명에 이른다. 이중환은 '택리지'에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했다.


김종직은 길재의 제자인 강호의 아들이다. 밀양에서 태어난 그는 선산부사를 지내며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학통을 김굉필, 조광조 등에게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장현광은 해평의 남쪽, 현재의 구미시 인동사람이다. 낙동강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선산읍 신기리 강변에 송당 박영의 정사가 자리한다. 감천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신당 정붕의 고향인 선산 포상리 신당포(新堂浦)다.


신당 정붕은 김굉필의 제자로 25세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언관과 대간직을 지내며 훈구대신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고 연산군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선비였다. 박영은 정붕을 스승으로 여겨 늘 그를 받드는 자세로 진지하게 학문을 물었다고 한다. 정붕은 연산군에 의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이후 청송부사로 재임했다. 당시 그는 영의정을 지낸 성희안으로부터 청송의 잣과 꿀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이에 "잣은 높은 산 위에 있고 꿀은 백성 집 벌통 속에 있으니, 내가 부사라 한들 어찌 구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정붕의 답장은 오늘날에도 종종 회자된다. 정붕은 46세에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임종할 때 공중에서 난데없이 음악소리가 들렸는데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됐다고 믿었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영남의 여러 수령들이 장사를 치러 주었다. 그리고 그의 묘갈명을 쓴 비석은 낙동강 물길을 따라 선산으로 왔다.


길재 이후 600여 년, 산천은 의구하다. 애기 주먹만 한 감들이 주렁주렁 하늘을 밝히는 골목길에 배 뽈록이 아기 고양이가 살랑살랑 태평이다. 정갈한 담벼락 아래에는 장정의 국그릇마냥 넉넉한 크기의 사기그릇 하나가 싹싹 비워진 채 뽀얗게 놓여 있다. 평화로운 꿈같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대전방향 구미IC에서 내린다. IC네거리에서 선산, 구미보 방향으로 좌회전, 약200m 전방 네거리에서 선산, 법원, 등기소방면으로 우회전, 약 600m 직진해 상주, 선산읍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선산 이정표 따라 약 13㎞ 직진하다 원리교차로에서 원리 방면 오른쪽으로 나간 후 원1리 방향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서원 앞에 주차장이 있다.


금오서원을 둘러싼 남산에는 금오서원 녹색길이 조성되어 있다. 3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연장 5.6㎞ 정도다.

금오서원을 둘러싼 남산에는 '금오서원 녹색길'이 조성되어 있다. 3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연장 5.6㎞ 정도다.

>>10월 25일 금오서원지 출판기념회 개최


(사)금오서원보존회는 금오서원의 역사를 집대성한 금오서원지를 발간하고 25일 오전 11시 금오서원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사)금오서원보존회가 주관·주최하고 구미시가 후원한다. 이날 행사는 금오서원보존회 정기숙 이사장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김장호 구미시장과 박교상 구미시의회 의장의 축사가 이어진다. 또 금오서원지 편찬위원인 채광수 영남대 교수가 특강에 나서 금오서원지 발간 의미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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