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자들의 진짜 직업/나심 엘 카블리 지음/현암사/272쪽/1만8천원

'철학자들의 진짜 직업'은 철학자들의 직업인으로서의 면모를 탐구한 책이다. 일례로 고대 그리스의 디오게네스는 위조 화폐 제작자였다. 이미지는 장레옹 제롬의 그림 '디오게네스'. <볼티모어 월터스미술관 소장>
철학자들의 생계 수단은 무엇이었을까? 흔히 '철학자'라고 하면 그 자체를 직업으로 생각한다. 마치 사유하고 연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처럼. 철학자는 매일 정해진 시간,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 바쁜 노동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기껏 해야 대학에서 철학 수업을 하는 교수 정도로 생각하기 마련. 과연 그럴까?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돈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은 그 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했을까?
신간 '철학자들의 진짜 직업'은 철학자들의 화려한 업적 뒤 숨겨진 직업인으로서의 면모를 탐구한 책이다. 고대 로마시대에 살았던 세네카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반나치 활동에 앞장선 시몬 베유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사상, 학파 등을 넘나들며 철학자 40명의 '진짜 직업'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직업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크게 철학자의 속성과 연결되는 일, 무관해 보이는 일, 그리고 이것까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는 일로 나눠 살펴본다. 먼저 섬세함과 논리력을 요하는 해부학자나 수학자·변호사 같은 직업이다. 또 하나는 신체의 훈련을 통해 정신력을 높이는 프로 사이클 선수·오토바이 정비사·렌즈 그라인더 같은 이들이다. 마지막으로 시대와 현실적 한계에 맞서 보다 자유롭게 사상을 다진 위조화폐 제작자·은행 강도·노예 등이다. 저자는 다양한 직업이 어떤 방식으로 철학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결과적으로 철학자들에게 직업이란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을 넘어 그들의 삶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는 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일례로 '사회계약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철학자 장자크 루소는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7년간 총 1만1천200쪽에 이르는 악보를 필사했다. 오페라 발레 '마을의 점술가'를 비롯한 여러 음악 작품을 손수 작곡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실존주의의 선구자 키르케고르는 단 한 번도 일을 한 적이 없으며,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적도 없다. 하지만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재산을 매우 신중하게 관리하고 수익성 좋은 투자처를 선택하며 적절한 시점에 보유한 증권을 매각했다. 그런 한편 고대 그리스의 디오게네스는 위조 화폐 제작자, 프랑스의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은행 강도, 로마제국 시대 에픽테토스는 노예였다.
철학자는 미덕을 좇고, 미덕에 부합하는 그야말로 이성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책은 이처럼 철학자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에 반하는 이야기를 펼친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며 시야를 넓혀준다. 결과적으로 철학자들의 사상과 정체성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게 한다. 풍부한 사례와 유쾌한 문체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저자인 나심 엘 카블리는 철학 교사이자 박사다. 2023년 여름 프랑스 공영 라디오 채널 프랑스 문화에서 '철학자들의 진짜 직업' 시리즈를 진행했다. 저서로는 '단절' '평범한 경험' 등이 있다. 번역은 '플라스틱 없이 1년 살기' '쓰레기 제로 라이프' '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세밀화로 본 정원 속 작은 곤충들'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등을 옮긴 이나래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가 맡았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