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센 상법’ 통과…중도실용 내팽개치나

  • 구경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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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25 16:14  |  수정 2025-08-25 21:31  |  발행일 2025-08-25
친기업 정책 외치던 이재명정부
반기업 정책 기조로 전환 조짐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당초 '중도실용' 노선을 주창하며 친(親)기업 정책을 약속했던 이재명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가 차츰 반(反)기업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국정 철학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도마에 오른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우리나라는 투자 수단이 부동산에 한정되면서 투기 수단으로 전락해 집값 폭등 등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며 "국민들이 이제는 주식 투자를 통해 중간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주식시장을)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정부 여당은 주주 가치를 높이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여기에 화답하듯 코스피가 올들어 7월까지 35.26% 상승하며 세계 주요지수 중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강화, 증권거래세 인상,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등이 담긴 세제개편안이 찬물을 끼얹었다. 이는 '코스피 5000' 시대를 표방한 정부 정책에 후진기어를 넣는 것은 물론,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약속했던 '증세 없는 복지'와도 상반된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개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 여론이 형성됐고,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4억원인데, 10억원어치 주식에 '대주주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게 상식적인지 의문"이라며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돈의 물꼬를 트겠다는 정부 정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주당도 '대주주 양도세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인하'하는 내용의 양도소득세 개편안에 대해 기존 50억원을 유지하자고 대통령실에 건의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부자 감세 논란을 의식한 듯 심사숙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여당의 반기업법 밀어붙이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은 지난 24일 노사관계에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노란봉투법'(노동관계법 2·3조 개정안)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국회는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전날부터 24시간 넘게 진행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종결하고, 노란봉투법을 재적 의원 186명 중 찬성 183표, 반대 3표로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고, 개혁신당은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재계가 총출동해 조선업 1천500억달러 등 총 3천500억달러의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한 가운데 근로조건이 악화될 경우 해외 투자도 쟁의행위 대상이 되도록 한 법이 통과된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6단체는 "법안 통과로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개념이 확대됐지만 법상 사용자가 누구인지,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사업 경영상 결정이 어디까지 해당하는지도 불분명해 이를 두고 향후 노사 간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차후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동차, 조선, 건설업이 다단계 협업체계로 구성된 상황에서 노란봉투법 통과 시 원청 기업들을 상대로 끊임없는 쟁의행위가 발생해 산업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외국 기업을 비롯해 국내 기업들조차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소기업 피해도 우려된다. 충남 공주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25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대기업이 노란봉투법을 피하기 위해 노조가 없는 협력사에 일감을 넘기거나 해외로 빠져나가게 되면 중소 협력사들은 존폐 위기에 몰리게 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다음 날인 25일 2차 상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의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현행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소액주주도 원하는 후보를 이사로 올릴 수 있게 되지만, 자칫 해외 투기자본 등에 경영권이 장악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선출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뽑지 않고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분리해서 선출하는 제도다. 현재 대부분의 회사는 3명의 이사로 감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라 3명 중 2명을 분리 선출하게 되면 감사위원회 위원 과반이 소수주주 측 인사로 구성돼 감사위원회의 의사결정이 소수주주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개정안은 지난 6월 여야 합의로 통과한 1차 상법 개정안보다 더 센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의미로 '더 센 상법'으로도 불린다.


경제계의 반발이 만만찮다. 이에 정부는 법 시행까지 남은 1년 동안 노사 양측의 의견을 수렴하는 전담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시행 준비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노사정 상설 소통창구를 TF 내에 설치해 개정법 적용과 관련한 쟁점과 우려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현장의 혼선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경제계의 입장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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