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고(故) 문인수 시인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동료 시인들이 대구 동구에 위치한 작은 다방 '르네쌍스'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를 갖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상봉 시인 제공>
대구 동구시장 입구 삼거리, 오래된 연립상가 2층에는 '르네쌍스'라는 작은 다방이 자리한다. 낡은 호마이카 식탁 여섯 개, 비닐 커버가 씌워진 철제 의자, 시퍼런 화분 몇 개가 마지못해 놓인 듯 서 있는 그곳은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공간이다. 한국 서정시의 대가 고(故) 문인수(1945~2021) 시인에게 이곳은 일상의 관람석이자 시의 배경이었다.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아 채소 노점과 횡단보도의 분주한 발걸음을 내려다보며, 세상의 축제와 부흥에서 벗어난 고요한 평화를 기록했다. 고인의 대표 시 '르네쌍스'에는 이 다방 풍경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곳 벽면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작은 동판을 새겨 붙이는 모임이 지난 4일 열렸다. 고인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동료 시인 이하석·장옥관·엄원태·송재학·윤일현, 평론가 신상조 등이 자리를 채웠다.

고(故) 문인수 시인의 시 '르네쌍스'의 마지막 구절을 새긴 작은 동판. <박상봉 시인 제공>
고인의 시의 핵심은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 대한 지극한 연민에 있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단골 다방에서 차 한 잔 나누는 방식으로 마련된 이날 추모 모임도 '문인수다운' 기념행사였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르네쌍스 창가 벽면에 문인수 시인의 초상을 손수 그리고, "나는 걸핏하면 '르네쌍스'의 관람석에 갇힌다"는 시 '르네쌍스'의 마지막 구절을 새긴 작은 동판을 부착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문학관, 시비 건립 등 거창한 행사에 비해 지나치게 소박한 행사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뜻깊은 자리였다"면서 "특히 동료 시인들이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동판을 제작했다는 점과 시인의 체취가 깊이 밴 생활 속 공간에 손바닥만 한 동판을 붙이는 일이 작고 문인 기념 형식에 하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하석 시인은 "문학은 때로 거대한 기념비보다, 일상의 작은 공간에서 더 깊이 살아남는다. '르네쌍스'는 이제 문인수 시인의 부재를 넘어, 그의 시와 숨결을 품은 또 하나의 문학적 풍경이 되었다"고 전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