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천제도의 사슬, 이젠 끊어야

  •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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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14 18:38  |  발행일 2025-09-14
황준오 기자 <사회3팀>

황준오 기자 <사회3팀>

'건진법사 청탁 의혹'으로 박창욱 경북도의원(봉화)이 구속 심사대에 섰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을 대가로 1억원을 건넸다는 혐의다. 아직 협의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 즉 정당 공천제도의 고질적 병폐를 또 다시 보여준다.


'공천은 민주주의의 첫 관문'이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공천권은 정당 지도부와 권력 핵심에 집중돼 왔다. 공천을 따내기 위해 특정 세력에 줄을 서거나 자금을 동원하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정치적 인물과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는 제도적으로 차단됐다. 그 결과 주민의 선택권은 축소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폐쇄적 구조가 강화됐다. 이번 사건은 이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사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과거에도 반복돼 왔다. 새누리당 시절의 '진박 감별' 논란이나 민주당 내 계파 갈등은 정당 공천이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기능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의혹은 종교, 정치, 브로커가 얽힌 복합 구조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공천 과정이 '돈과 인맥의 경합장'으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이 사슬을 어떻게 끊어야 할까. 먼저, 공천 과정의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경선 룰과 심사 기준을 사전에 공개하고, 결과를 실시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또, 불법 자금 거래가 적발될 경우 후보자뿐 아니라 정당 지도부에도 연대책임을 지우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천관리위원회에 학계·법조계·시민단체 인사를 참여시켜 시민사회의 감시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러한 장치가 최소한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논의는 공천제도의 폐지 가능성이다. 정당이 후보자를 임명하는 지금의 구조를 유지하는 한, 권력 집중과 금권 정치의 유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공천제도를 폐지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출마할 수 있고, 유권자가 직접 후보를 선택하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이는 기득권 장벽을 허물고 정치적 다양성을 확대하며, 시민 참여를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길이다. 물론 후보 난립과 정당 기능 약화 같은 우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공천이 금전과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상황에서는, 근본적 개혁 없이는 정치 불신의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


이번 특검 수사가 단죄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천제도의 실효성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투명성을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폐지까지 포함한 근본적 개혁 논의에 나설 때 비로소 민주주의의 첫 관문은 제 기능을 회복할 것이다.


정치의 신뢰는 제도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공천제도의 사슬을 끊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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